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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게임업계의 골든타임


질병코드 반대 근거 마련 위한 의·과학적 연구 필요

[아이뉴스24 김나리 기자] 최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문제를 놓고 열린 한 토론회에서 "게임이 중독이면 음식도 중독"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경민 서울대 의과대학 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는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에 1998년 실렸던 논문(Evidence for striatal dopamine release during a video game)을 근거로 "뇌 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 음식을 먹을 때(50%)와 게임을 할 때(13~50%) 유사하게 분비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이날 발표는 단순 감성에 호소하는 게 아닌 기존의 과학적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신한 시각에 객관적 근거가 뒷받침되면서 더욱 설득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26일 판교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게임, 취미인가? 질병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6월 26일 판교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게임, 취미인가? 질병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등이 지난 5년간 진행한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 역시 객관적인 의·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의학계에 대응하는 게임업계 논리를 탄탄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게임 과몰입과 관련한 국내 최초의 추적 연구인 이 연구는 지난 5년간 2천명의 청소년 중 매년 50% 이상이 게임 과몰입군에서 일반군으로 이동했고, 지속적으로 과몰입군을 유지했던 청소년은 전체의 단 1.4%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를 통해 병행된 뇌자기공명영상(FMRI) 임상 연구에서는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등 공존질환이 없는 순수 게임 과몰입군만의 특별한 뇌 구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도 나왔다.

각종 임상 연구 등을 통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들이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증거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 과몰입 현상에 질병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후 게임업계는 줄곧 '게임은 문화'라는 메시지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대표적 문화 콘텐츠인 게임을 중독물질로 취급해 규제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는 '게임중독은 질병'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과학적인 연구 결과 앞에서 빛을 잃기 마련이다. 연구에는 연구로 맞대응해야지 그저 감정에만 호소하는 메시지로는 근거가 약하다는 얘기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보건복지부 측은 올 하반기 다양한 연구결과를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인터넷·게임,스마트폰 중독 발생기전 및 위험요인 규명을 위한 전향적 코호트 연구 등을 조만간 잇따라 공표할 예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통계청이 향후 업계 의견 등을 반영하기 위한 객관적인 연구 자료를 요청했을 때, 게임업계와 의학계 중 누가 얼마나 더 풍부한 의·과학적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 들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과몰입과 관련한 의·과학적 연구를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실시돼 온 가장 긴 추적조사 연구인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는 올해부터 중단했다.

이에 더해 당사자인 게임업계 역시도 별다른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NHN이 게임문화재단에 3년간 4억5천만원을 투입해 진행 중인 일부 연구를 제외하면 업계 차원에서 두드러지게 진행되는 과학적 연구는 없는 상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역시 아직은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 교수가 예시로 든 논문처럼, 게임은 중독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 등도 많지만 이 역시도 별다르게 소개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게임은 문화라는 인식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근거가 희박하면 이는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찬성 측은 물론이거니와 중도층까지 설득하려면 과학적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감성에 호소하는 식의 대응으로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이길 수 없다.

통계청이 예고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시점은 이르면 2025년이다. 게임업계의 골든타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고 있다.

김나리 기자 lor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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