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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韓 소비자의 베블런 효과에 배짱부리는 명품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 12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은 평소와 달리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3대 명품 브랜드로 불리는 '샤넬'이 제품 가격 인상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쇼핑객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어수선해진 사회적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순서가 밀려 구입하고자 하는 제품 재고가 없을까 그게 더 불안한 눈치였다. '샤넬' 매장이 입점한 주요 백화점에선 오픈과 동시에 고객들이 달리기 경주를 하듯 뛰어 들어가는 '오픈런' 현상도 나타났다. '생활 속 사회적 거리 두기'는 여기서 통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오전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사진=아이뉴스24 DB]
지난 12일 오전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사진=아이뉴스24 DB]

이처럼 쇼핑객들을 뛰게 만든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 소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국내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면서 명품업체들은 국내 시장을 겨냥해 수시로 제품 가격을 올려 자기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늑장 A/S도 다반사다.

한국 시장에서 수천억 원을 벌어들이지만 기부 역시 인색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동일한 데 중국에만 기부하고 한국에는 돈 한 푼 건네지 않은 명품 업체들도 허다하다. 루이비통, 불가리 등을 소유한 LVMH 그룹은 중국 적십자에 230만 달러(약 28억 원),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링 그룹은 110만 달러(13억 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한국에 기부했다는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명품 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해도 명품 판매량은 줄기는커녕 되레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이번 '샤넬' 가격 인상 효과로 주요 백화점들의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상승했다. 반면 일반 패션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명품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향해 역차별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품 마니아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이번 샤넬 제품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자 오픈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승자'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 같은 기형적 소비 덕에 명품업체들만 신났다. 식품업체들은 가격을 10~20원만 올려도 온갖 비난을 받는 반면, 명품들은 가격을 수십만~수백만 원을 올려도 오히려 수요가 더 몰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공정위 역시 라면, 치킨, 우유 가격은 '서민 경제'라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명품은 '사치품'이라며 가격을 대폭 올려도 수수방관이다. 그저 시장 경제 논리라는 명분만 내세울 뿐이다. 명품 시장이 어떻게 형성돼 있고, 어떤 사업자들이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견제 장치가 없는 글로벌 명품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백화점을 대상으로 명품업체들이 과도한 인테리어비를 떠넘기거나 끼워 팔기 등을 통해 시장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행위를 벌이는 것은 이미 한 두해 일도 아니다. 유통업체들의 판촉비·인테리어비 전가에 대해서 칼을 들이밀던 공정위는 명품들이 벌이는 갑질과 잦은 가격 인상엔 한 없이 관대한 듯 하다.

한국 소비자가 명품 업체들의 호갱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한 두 해 일이 아니다. 정부나 소비자나 '명품'이란 단어만 나오면 나약한 모습만 드러낸다. 이로 인해 명품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명품'에만 집착하는 소비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장에서 지갑을 열기 바쁘다.

해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맹목적 집착과 미비한 국내 규정은 이들의 배짱 영업을 더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들 스스로가 명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글로벌 '호갱'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 시장을 향한 명품 업체들의 횡포를 부추기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소비자의 몫이다. 언제까지 한국 시장이 명품 업체들에게 휘둘리기만 해야 할 지를 두고 소비자들도, 정부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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