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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제는 증시 포퓰리즘인가


[아이뉴스24 한수연 기자] 그간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심심찮게 행사된 곳은 금융시장이었다. 정책의 시비를 떠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대출금리와 수수료 인하를 강제하는 게 관습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이는 코로나19를 내세워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본시장마저 이 포퓰리즘의 손아귀에 들어간 모양새다. 애초에 한시적이라고 못 박았던 공매도 금지가 추가로 연장돼 국내 증시가 1년간이나 모든 종목에 공매도를 금지한 선례를 남기게 된 게 대표적이다. 이로써 한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함께 전세계에서 공매도를 금지하는 3개국이 됐다.

국내 공매도 시장이 외국인과 기관에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인 데다 불법 공매도가 시세조종에 악용돼 온 것은 사실이다. 동학개미운동을 필두로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묵과하는 것 또한 분명 문제가 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시황판. [사진=조성우 기자]
서울 여의도 증권가 시황판. [사진=조성우 기자]

하지만 이는 제도를 고쳐 균형을 맞출 일이지, 당장 개미들의 원성을 의식해 임시방편으로 결정을 유보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며 "제도개선을 추진하려 했지만 아직 이를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은 그런 이유에서 매우 무책임한 처사다.

더욱이 지금 국내 증시엔 밸류에이션 부담과 과열 논란이 그득하다. 최근 미국 증시 급락에 코스피는 2400선을 하회하긴 했지만 역대급 유동성에 연저점 대비 65% 가까이 뛴 상태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12.8배까지 치솟아 지난 2007년 금융위기 당시의 최고치에 근접했다. 코로나19발(發) 폭락장 때와는 달리 지수방어 차원에서 공매도 금지를 논할 유인이 희석된 것이다.

이처럼 제도적 미비로 이해당사자 간 의견이 대립할 때 금융당국은 균형을 잡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자본시장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는 한쪽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 금융위원장이 최근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쏟아낸 A4 5페이지 분량의 모두발언에서 '개인 투자자'가 10번 이상 언급된 것은 우연일까.

마침 금융당국은 개인 투자자의 공모주 배정방식까지 손보겠다고 공언했다. 청약증거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주식을 배정받는 게 고액 자산가에게만 유리해 개선이 필요하단 취지지만, 이는 자본시장의 논리에 맞지 않을 뿐더러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다. 특히 현재 거론되는 추첨제는 자칫 사행성 투자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

끝판왕은 '원금보장'에 국고채 이상의 수익률을 약속한 뉴딜펀드다. 펀드가 원금이 보장된다니, 이는 수익보장이나 손실보전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55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를 의식해서였는지 경제부총리는 '사실상'이란 단어를 앞에 붙였지만, 자본시장에선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는 펀드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공평한 게임이 불가능해진다. 정부가 플레이어(Player)로 나선 마당에 원금까지 보장되는 펀드의 수익률을 뛰어넘을 금융투자상품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피(被)투자 기업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게 됐다. 포퓰리즘이 자본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나아가 도덕적 해이까지 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학개미운동은 폭락했던 국내 지수를 보란 듯이 끌어올렸고, 더는 외국인에 휘둘리지 않는 시장환경을 조성했다. 국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는 비중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영향력이 세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그들의 구미만 돋우는 경제정책의 수단이 돼선 곤란하다. 시장질서를 저해하면서까지 정책을 펴는 건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불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 '개미 종합선물세트'란 말이 나오는 이유를 금융당국은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한수연 기자 papyr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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