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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주주님, 뭐 잘못하신 거 있나요? 그럼 제가 사업을 못하는데"


 [그래픽=아이뉴스24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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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엔 이 같이 명시돼있다. 말 그대로 범죄 행위를 한 사람만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과실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라는 민법의 기본 원칙이 담겼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나, 연좌제가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춘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조항이 헌법에 담긴 게 1980년이니 말이다. 그전까진 혹여나 먼 친척이 죄를 짓지 않았나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연좌제는 엄격히 금지된다. '엄격하다'는 말보다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라고 보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연좌제 이야기를 길게 한 건 금융권 이슈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삼성카드 등 6개사에 대한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 허가 심사를 보류했다. 해당 회사의 모회사들이 금융감독원 제재심을 받고 있거나 소송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마디로 대주주의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대주주의 법적 불확실성이 풀리면 심사를 다시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의 경우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7년 하나은행이 최순실 씨를 도운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하나금융지주를 검찰에 고발했는데 아직 조사조차 돌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언제쯤 불확실성이 해소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카드는 대주주인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으면서 대주주의 법적 불확실성이 풀리긴 했다. 모회사가 기관경고를 받은 만큼, 삼성카드도 향후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아직 제재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시간문제다.

"그까짓 사업, 안 하고 말지"라고 정신승리하기엔 마이데이터는 가치가 크다. 최근 금융사들은 앞다투어 '초개인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통해 자신들의 플랫폼에 고객을 붙잡아 놓기 위해서다. 플랫폼 경쟁력은 곧 회사의 경쟁력이다. 마이데이터는 초개인화 마케팅을 보다 정교하게 해줄 도구다. 은행·카드·보험 등 기존의 금융업계, 빅테크, 핀테크 업계의 무한 경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이들 신청사들의 과실은 전혀 없다. 단지 대주주의 문제만으로 사업권을 따내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연좌제'가 부활했다는 비판이 금융권에서 나오는 이유다.

사실 금융당국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아보이진 않는다. 애초에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긴 하다. 신용정보업감독규정엔 대주주 요건에 대한 예외조항이 있다. 신용정보업감독규정 제7조 별표 2의2를 보면 대주주가 최근 1년간 기관경고조치 또는 최근 3년간 시정명령이나 중지 명령, 업무정지 이상의 조치를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하나, 건전한 영위를 어렵게 한다고 볼 수 없거나 금융산업의 신속한 구조개선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명시돼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종합지급결제사업자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두고 "빅테크라든지 하는 것은 혁신과 경쟁을 해서 왔기 때문에, 그 취지로 볼 때 강한 규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혁신금융이라고 해서 규제가 필요 없다고 보진 않는다. 오하려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경우 어떤 측면에선 더 강한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대주주 문제만으로 사업 기회가 제한되는 건 금융당국이 표방하는 '혁신금융'엔 맞지 않는다. 고릿적 연좌제를 타파하는 혁신을 기대해본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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