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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대 칼럼] '사법의 정치화'를 막을 길은 없나


우리 정치권의 패악질이 도를 넘으면서 '정치사법화'에 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자칫 삼권분립마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과 보수 진보의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불리한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사법부를 공격하는 모습이 일상화되었다. 특히 지난해 '12.3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서 사생결단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사법부를 과도하게 압박하면서 사법부가 흔들리는 듯한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사법부가 '편가르기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커져가고 있다.

입법 권력이 자기의 입맛대로 사법부를 정치화로 오염시키고, 사법부 또한 여러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망국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권이 자초한 결과다. 그 원조는 검찰의 정치화이다. 필자는 1990∼2000년 무렵 동아일보 법조출입기자로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선다'는 애정어린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공염불이었다. 그 후 검찰은 개과천선은커녕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더욱 야합하며 정치 속으로 함몰되어왔다.

그간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우리 정치권은 툭하면 고소 고발로 법 앞으로 내달리는 '정치의 사법화'를 거리낌없이 자행해왔다. 자연히 이를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필연적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야가 서로 고발한 국회의원의 숫자만 3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앞으로 수사와 판결 결과에 따라 여야 정치권이 제 입맛대로 사법부를 공격할 것은 뻔하다. 곧 다가올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판결 등은 사법의 정치화가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 될 듯하다. 늘 그랬듯이 법적 논리에 따른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진영이란 색안경을 낀 채 그 판결의 저의를 의심한다. 그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세력들을 중심으로 물리적 충돌을 포함한 내전적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0월 헌재가 닥칠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한 이종석 전 헌법재판소장의 퇴임사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 전 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권한쟁의심판, 탄핵 심판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헌재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났고,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며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의 경우도 이재명 대표와 같이 정치인이 연루된 형사재판에서 하급심과 상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선고를 미루고 있는 지금 헌재의 위기도 근본적으론 '사법의 정치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진보성향 재판관들에 대해 불신을 보내고 있고, 마은혁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야당도 윤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성향의 재판관들을 문제삼으며 조속한 선고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탄핵심판선고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곧이 곧대로 들을 국민들이 많지 않은 게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판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것일까. 우선 헌재가 심리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진영 재판이란 의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건 법원도 마찬가지다.

또한 여야가 헌재 재판관을 나눠먹기식으로 임명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헌재 재판관 임명과 관련해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처럼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판관을 뽑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여야가 서로 비토권을 갖게 되어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에 치우친 재판관을 선출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개헌을 통해 제도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사법부의 판결이 정치에 오염되어 권위를 잃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먼저 사법의 정치화에 큰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사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연정과 협치를 통해 국정을 풀어가는 독일 정치를 본받아야 한다. 사법부도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정의로운 사법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가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기 광명시장 [사진=양기대 전 의원]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기 광명시장 [사진=양기대 전 의원]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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