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인공지능(AI)이 글로벌 산업 전반을 세차게 뒤흔들고 있다.
생성형 AI,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 데이터 집약형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고성능 인프라의 중요성이 전례 없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데이터센터가 있다.
AI의 학습과 추론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심으로 한 고성능 컴퓨팅(HPC) 자원에 기반한다.
이 자원은 막대한 전력과 정밀한 냉각, 촘촘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요구하며, 이런 복합적인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바로 데이터센터인 것이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가 2023년 2192억 3000만 달러에서 2032년까지 연평균 11.6% 성장하여 5848억 6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맥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연평균 22%씩 증가해, 현재 60GW에서 약 171GW에 이를 전망이다.
이미 이 시장은 IT 인프라를 넘어, 국가의 경쟁력과 디지털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먼저 대응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은 2024년 3분기(7~9월)에만 506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며, AI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버지니아는 세계 최대의 데이터센터 허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이 지역의 라우던 카운티는 '데이터센터의 수도'로 불리며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70%가 이 지역을 경유한다고 한다.
또한 올해 1월 오라클, 오픈AI, 소프트뱅크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무려 5000억원 달러(약 70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도 진격 중이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는 올해 3월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샤프의 기존 LCD TV 패널 공장을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약 1000억 엔(약 98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며,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 전력 용량은 150MW로 시작하여, 향후 240MW 이상으로 확장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일본은 정부 주도 하에 세제 혜택과 전력망 확충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올해 최소 4개 이상의 거대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밝히며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SK텔레콤은 아시아 최대 수준인 GW급 전력용량을 갖춘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를 남부 지역에 건설할 예정이며, 그룹사인 SK하이닉스의 HBM과 건설, 에너지 인프라를 총동원할 계획이다.
KT는 서울과 경북에 대용량 GPU 수용이 가능한 센터를 세우고 있으며, LG유플러스는 파주에 서버 10만 대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2027년 준공 목표로 건설 중이다.
액체냉각 기술도 적극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국내 IT 기업들도 자체 AI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확장 중이다.
네이버는 세종시에 축구장 41개 크기의 AI 특화 데이터센터를 구축했으며, 카카오는 경기도 안산에 총 12만대의 서버를 보관할 수 있는 하이퍼스케일 규모의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을 준공 중이다.
이들은 검색, 클라우드, AI 챗봇, 로보틱스 등 고도화된 서비스 구현을 위한 GPU 인프라를 직접 확보하고 있으며, 국내 AI 생태계 구축에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몇 가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3~4배 이상 전력을 필요로 한다.
랙당 전력 밀도는 20~40kW, 하이퍼스케일급은 60kW 이상이 요구된다. 따라서 전력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지방에 데이터센터 구축이 집중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통신사와 기업들은 정부에 송배전망 확충, 전력 계통 영향평가 규제 완화, 수도권 내 세제 혜택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어 전력망 과부하와 주민 반발로 인한 착공 지연이 잦으며, 인허가를 받고도 1년 이상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 사례가 존재한다.
경기 고양, 인천 부평 등지서 데이터센터 건립이 지연되거나 반대에 봉착하기도 했다.

GPU 보유가 녹록지 않은 것도 현실적인 문제다. GPU 국내 보유량이 몇 천 개 수준이란다.
작년 말 국내의 IT기업 대표가 엔비디아 고성능 GPU 국내 보유량이 2000개 수준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올해 2월 정부가 올해 내 GPU를 1만장 이상 확보한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글로벌의 빅테크들이 수십만에서 수백만 개 수준의 GPU를 주문하고 도입하는 상황과 비교된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25년 말까지 130만 개 이상의 GPU를 확보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AI 산업 경쟁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AI 기술은 글로벌 빅테크의 손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으면 국내 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은 AI 경쟁에 진입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도 발맞춰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AI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국회는 GPU 투자 등에 대해 대·중견기업은 19%, 중소기업은 최대 29%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조세특례 제한법(조특법)을 개정해, AI 데이터센터 등 시설투자에 대해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억제 규제로 인해 수도권에서는 세제 혜택을 온전히 받을 수 없어, 이에 대한 유연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부가 추가로 고민할 사항으로는 첫째,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확충을 위한 공공투자 확대다. 전력망 구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민간이 초기 자금 부담을 지지 않도록 송전망 구축에 대한 공동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 친환경 데이터센터로의 전환 유도를 위한 보조금 정책이다. 액침냉각 및 수냉식 기술 도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PUE(전력사용효율) 기준을 만족하는 시설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센터용 부지 확보에 있어 규제 간소화가 필요하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토지 규제와 주민 민원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정부의 중재 및 특별구역 지정 등의 조치가 요구된다.

넷째, GPU 확보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전략적으로 협력해 선제적으로 GPU를 대량 확보한 후 민간과 연구기관에 공동대여 또는 클라우드 방식으로 보급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하다.
다섯째, K-클라우드, K-슈퍼컴퓨팅 전략과 연계해 범부처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인재양성·반도체·네트워크 기업들과 함께 생태계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AI 패권은 데이터센터에서 시작된다. AI는 모든 산업의 기반기술이 되었고, 그 기반 위에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데이터센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전력, GPU, 입지, 냉각기술 등 인프라 전반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민간기업의 투자와 기술력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 AI 시대의 심장은 바로 데이터센터다.

박래혁 전 국회정책연구위원은?
고려대 불어불문학·한국사학과 졸업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전공 석사를 수료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당 측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전 국회정책연구위원을 지냈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실무위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실무위원으로 일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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