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사진=이순병]](https://image.inews24.com/v1/f8c529180b8c8d.jpg)
의리와 도리는 비슷한 뜻인 듯해도 쓰임새는 조금 다릅니다. 한학(漢學)을 공부한 분들은 두 용어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계실 것이지만, 여기서는 일상적 수준에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평할 때 ‘의리 있는 사람’, 또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 하지, ‘도리 있는 사람’이란 말은 안 씁니다. 이런 쓰임새로 미루어 보면, 의리는 ‘있고 없고’의 문제이고, 도리는 ‘알고 모르고’의 문제입니다. 의리는 사람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도리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약속은 깨질 수가 있지만, 하늘의 뜻은 사람이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인간이 갖지 못한 ‘절대 진리’를 찾아 믿음의 대상으로 받들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절대(絶對)’란 상대(相對)가 없는 ‘오직 하나(유일, 唯一)’를 뜻하고, ‘진리(眞理)’란 ‘변하지 않는 이치’를 뜻합니다. 즉, 인간은 ‘내가 믿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오직 하나’에 기대어 살고 싶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노자의 도(道), 불교의 법(法),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원인(第一原因, the first cause) 등이 다 ‘하나뿐인 진리’를 뜻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유학자 순자(筍子)는 “하늘아래 두 가지 도가 없고, 성인은 두 마음이 없다(천하무이도 성인무양심, 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고 했습니다. 이 말을 지금 우리 시대의 가르침으로 옮긴다면 “세상에 두 가지 진리가 없듯, 지도자는 두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로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위에서 순자는 성인(聖人)을 ‘오직 한마음만 가진 사람’으로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4대 성인으로 받드는 분들은 그런 정의에 맞는 분들일 겁니다. 지금도 그런 분들은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살아 가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런 노력이나마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성인과 보통 사람의 중간 어디쯤에 ‘지도자’라는 층위(層位, layer)가 존재할 것입니다. 순자의 말을 빌면, 지도자란 적어도 ‘보통 사람보다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글은 천천히 생각하면서 쓸 수 있지만, 말은 그럴 겨를이 없어 속내가 드러나기 쉽습니다. 4대 성인의 말씀을 담은 성경, 불경, 논어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대화(對話)는 모두 제자들이 쓴 것이지 성인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하나 같이 그 마음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렇기에 어디서 누구에게 말하든 그 뜻은 오직 하나로 읽혀 왔습니다.
비록 성인은 아닐지라도, 지도자에게 말은 그의 마음과 품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생각을 바꾸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평소에 그의 진정성이 검증되어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존경한다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말은 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누구를 존경하든 안하든 그건 그의 마음에 달렸고, 국민들은 그것이 그의 생각이라고 알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내 말은 진심(眞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뜻의 말은 지도자에게 치명적입니다. 국민들은 자기가 조롱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믿음을 되찾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공자님은 삼강오륜의 첫째 덕목으로 군신유의(君臣有義)를 꼽았습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지켜야 할 의리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역사를 보면 성군(聖君)의 시대에는 간신(奸臣)이 없었습니다. 임금이 도리를 지키면, 신하도 도리를 지키는 것이 곧 임금에게 의리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군의 시대가 난세(亂世)가 되는 이유는 임금이 도리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하는 임금을 따라야 할 지, 나라를 지켜야 할 지 목숨을 건 결심을 해야 합니다. 충신은 임금과의 의리보다 도리를 택합니다. 임금에게는 그의 존재가 위협이 되기 때문에 폭군의 시대에는 충신이 희생되었습니다.
지지자들과의 의리를 버리는 것이 힘들지라도, 그 의리가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버리는 것이 국가 지도자가 갈 길이라 믿습니다. 그 첫걸음이 말한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국민 통합을 약속했으면, 전제나 토를 달면 안 됩니다. 전제나 토를 달면 패거리 의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실천에 달렸습니다. 지난 날 주장했던 것과 다른 정책들을 펴야 할 경우가 수없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마다 사과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다시 믿음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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