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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구광모의 'Winning R&D'와 한국 제조업


[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지난 9월 2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 구광모 LG 대표를 비롯해 LG그룹 경영진 40여 명이 모였다. 이 모임은 원래 경영전략을 논의하는 사장단 회의다. 올해로 세 번째 열렸다. 이날 모임이 다른 해와 달리 특이했던 것은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각 계열사의 인공지능 대전환(AX)을 이끌고 있는 디지털최고책임자(CDO)도 참석했다는 점이다. AI 없이 경영을 논하기 힘든 시대의 단면이다.

구 회장이 이날 제시한 키워드는 ‘Winning R&D’였다. 방점은 ‘Winning’에 찍혀 있다.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업에게 연구개발(R&D)은 숙명적 과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수식어가 붙었다. Winning. 그것은 단순한 꾸밈말로 여겨지지 않았다. 기술에 관한 연구개발과 함께 쓰기엔 낯선 단어이다. 승부사의 언어다. 그렇다면 구 회장이 요구하는 R&D는 전투(戰鬪)다.

구광모 LG 대표(오른쪽)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반도체 설계 업체 '텐스토렌트'의 CEO '짐 켈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LG]
구광모 LG 대표(오른쪽)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반도체 설계 업체 '텐스토렌트'의 CEO '짐 켈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LG]

‘Winning R&D’는 솔직히 생소했다. 구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되고 LG가 만든 말로 짐작됐다. 검색해 보니 역시 결과물이 많지 않다. LG 관련 게시글만 나온다. 이 고유한 전투적 언어는 그래서 LG라는 화살이 날아가 박힐 과녁이다. 이날 회의는 그 과녁을 향해 주요 계열 경영진들이 영점을 맞추는 자리였다. LG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미래로 갈 길을 이 한마디 말로 압축해낸 것이다.

Winning은 단지 비상한 각오를 다지자는 결의이기만 하다면 별 의미가 없다. 누구나 그 정도는 한다. 중요한 건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다. 모든 전투는 추상적이지 않다. 구체적인 상대가 존재한다. 전투는 결국 상대와 나의 사실로서의 현실 대결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병법의 금과옥조로 250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는 전투를 해본 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로 하여금 ‘Winning R&D’라는 이 생소한 어휘를 창안하게 만든 피(彼)는 누군가. “중국 경쟁사들은 우리보다 서너 배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이기려면 ‘구조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구 회장이 한 말이다. LG의 경쟁회사는 수두룩하겠지만 그중에 핵심적인 전투 대상은 ‘중국의 경쟁사들’이다. 그것도 LG보다 서너 배 많은 자본과 인력을 가진.

현실이 그렇다. LG는 TV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배터리 등 그룹 주력 사업에서 중국 경쟁사들과 피 마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과거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 기업들이 어느새 ‘서너 배 많은 자본과 인력을 가진’ 상대로 돌변했다. 다윗과 골리앗이 맞선 형국이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골리앗의 이마에 날릴 LG의 ‘돌’은 무엇인가. 구 회장이 ‘구조적 경쟁력’이라고 말한 것은 구체적으로 뭔가.

LG 몇몇 임원의 말에서 짐작해 본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한 포럼에서 중국과 1대1 국면을 만들면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시간의 압축’ 전략을 제시했다. 그게 일종의 ‘다윗의 돌’이다. ‘시간의 압축’은 특허를 기반으로 목표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Winning R&D’ 방법 하나가 ‘지름길 찾기’다.

이진식 LG AI연구원 랩장은 우리가 거쳐 가야 할 AX의 길을 ‘AI-to-Materials’라고 말한다. 수출 제조 중심이었던 한국 산업 구조에 AI를 접목해야 할 이유와 최상의 방법을 한 마디로 압축한 걸로 보인다. 왜? 30년 이상 지속된 한국 산업 구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볼 때 아주 작은 시장이다. 우리 경제를 내수 기반 산업 중심으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답은 여전히 글로벌이다.

글로벌 수출 기업이라면 ‘AI-to-Materials’는 반드시 꼭 탐구해야 할 화두다. 특히 우리 수출 기업엔 핵심적 과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왜 ‘AI-to-Materials’인가. 아마도 재무를 고민하는 기업의 핵심 임원은 우선적으로 비용 절감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그건 필요하지만 충분치 않다. 그걸로는 Winning을 챙길 수 없다. 그렇다면 비용 절감 이외의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이 우리 숙제다.

수많은 전문가가 이미 있는데 문외한이 할 소리는 아니어서 말 꺼내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이 말은 꼭 글로 쓰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일 테다. 그들의 앎은 엄청 소중한 것이다. 전투를 통해서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에 약간이나마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 ‘AI-to-Materials’의 핵심은 비용 절감이 아니다. 경쟁 상대보다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고안해내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했나. 18년 전 스티브 잡스의 애플 팀이다. 메모리의 삼성과 안 싸우고 독자적인 길을 찾아낸 모리스 창의 TSMC 팀이다. 인텔의 아성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젠슨 황의 엔비디아 팀이다. 누구도 구글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오픈AI 팀이다. 그리고 지금 샘 알트먼이 저격하는 팔란티어 팀이다. 그들은 모두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이었다. 그걸 깊이 알아야 지름길이 보인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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