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데스크칼럼] 이재용 아들과 이재명 그리고 어떤 위선(僞善)


[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이 지난 9월 15일 해군에 입대했다. 이 뉴스는 사실 산업부 소관은 아니다. 그런데 산업부 기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우리 국민 다수가 눈여겨볼 사안이라 여겼기 때문일 거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에 가는데 왜 그의 입대는 특별한 관심거리가 되는 걸까. 대부분 이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맞긴 하다. 그런데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보통 사람의 입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지만 그의 입대는 선택이라는 것이 확연한 차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복수 국적자다. 대한민국의 보통 청년과 달리 마음먹기에 따라 군대에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해군 장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 특별하고 고유한 선택은 다른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이 그 입대에 관심 두게 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5.9.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5.9.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연합뉴스]

그 선택에 어떤 댓글(생각)이 달릴지 궁금했다. 다 보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그의 행동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로 봤던 셈이다. 이 반응은 평면에 공을 던졌을 때 튕겨 나오는 것처럼 선명하다. 드러난 현상에 대한 직관적 이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훨씬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드러난 선택보다 안 보이는 속셈을 보려 한다.

그 선택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하는 거다. 행동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처럼 보이지만 그게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속셈은 다른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보이는 그 행동 또한 결국 위선(僞善)일 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은 절대 손해 보는 선택을 하지 않는 동물이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타인의 선택에 대해 판단하는 데에는 이처럼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전자가 평면적이라면 후자는 입체적이다. 후자는 선택 자체보다 그 배경과 동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뉴스메이커들은 항상 후자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뉴스메이커는 대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항상 더 나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대한민국에서 양질 모든 측면에서 선택의 총량이 가장 큰 사람은 아마도 이재명 대통령일 것이다. 말과 글과 결재를 통해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모든 선택은 이재용 회장 아들의 입대 결정보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여러 경우의 수 가운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걸 고를 것이다. 그 모든 선택은 또 한쪽에서는 기필코 위선이라고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의 선택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권력자는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권력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이런 취지의 말을 거듭하고 있다. 이 말을 계속 강조하는 건 그게 모든 공직자의 첫 번째 덕목이고 본인 또한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겠다. 이 대통령이 내리게 될 모든 선택을 위한 본인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발언이다.

이 선택이야말로 그래서 큰 위선일 수 있다. 기준이 되는 그 발언과 또 다른 구체적인 다른 선택 사이에 모순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가 지금까지 그렇게 보여줘 왔다. 의지만 갖고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고, 좋은 의도도 결과적으로 위선이 될 때가 적지 않다. 국어사전은 위선(僞善)에 대해 ‘겉으로만 착한 체함’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위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위선의 불가피성은 이미 그 말 자체에 내포돼 있다. 한자 위(爲)의 첫 번째 뜻은 ‘하다(do)’다. 여덟 번째 뜻은 ‘가장하다(pretend)’이다. 하나의 글자 위(爲)가 목적어 선(善)을 양쪽으로 부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말 자체가 ‘사람에게 선과 위선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선을 후자로만 해석해왔다.

그러다 보니 위선보다는 ‘사람은 손해 보는 선택을 하지 않는 동물’이라고 강조한 ‘폭력적 정직성’에 더 점수를 주기도 한다. 극우적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가 그 전형이다. 그런데 그 ‘정직한 동물성’으로 세상을 정글로 만드는 게 인류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해법일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 아닌가. 어쩌면 사람에겐 위선이 최선일 수 있다. 선(善)의 출발점이 위선일 수 있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데스크칼럼] 이재용 아들과 이재명 그리고 어떤 위선(僞善)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