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아시아의 중심부 실크로드를 지날 것이다. 과거 실크로드 중 가장 험난한 지역이다. 우리는 언론 등에서 '중앙아시아' 지명을 자주 듣는다. 아시아대륙의 중앙이라는 뜻의 '중앙아시아' 지역은 두 지역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천산산맥 서쪽의 우즈베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5개 국가로 서쪽의 투르크족이 사는 땅 '서투르키스탄'으로 부른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신장 지역으로 동쪽의 투르크족이 사는 땅으로 '동투르키스탄'이다. 지리학은 두 지역을 합쳐서 '중앙아시아'라 호칭한다.
동쪽과 서쪽 투르키스탄은 이슬람교 신앙, 튀르크어 사용 등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이다. '신장'(新粧)은 18세기 중반 청나라(건륭제)가 위구르족이 살던 서쪽 땅을 점령하고 '새로운 영토'(신장)라는 뜻으로 300여 년 전에 중국영토로 편입한 지역이다. 신장 지역은 위구르족의 다수 종족이었으나 현재는 한족이 많이 이주해 옴에 따라 한족이 다수 인종이라고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d5150aad5e1ca4.jpg)
신장의 위구르족에게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지하드조직, 무슬림 군사 조직이 무기 지원 등 독립을 부추기고 있어서 테러 문제, 시위자의 인권 문제, 정치범 문제 등 국제적 긴장 지역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위구르족'의 역사를 여행 과정에서 알아봤다. '위구르족'은 투르크족(돌궐족) 계통의 종족으로 천산산맥 북쪽 알타이산맥과 몽골고원에 살았던 종족이다. 전성기는 서기 740년에서 840년까지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종족이다.
8세기 '안록산 난'(755~763) 진압을 위해 당나라 요청으로 당나라에 군대를 파견한 적도 있다.
당나라는 파병 비용을 주기로 했으나 재정파탄으로 못 주게 되자, 수도인 장안을 약탈해서 전비를 받아 갔던 당시의 강대국이다. 현재는 없어진 '마니교'를 국교로 정한 유일한 국가이다. 840년 왕족의 내분과 키르기스스탄 족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된다. 일부 위구르족 지배층이 천산산맥을 넘어서 남쪽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투루판, 쿠차 지역에 도망 와서 다시 '위구르 왕국'을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 신장 지역 위구르족의 시작이다.
몽골의 칭기즈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했던 1205년 신장의 위구르 왕은 먼저 투항해서 칭기즈칸의 사위가 되고, 유럽 원정에 함께 참여한다. 이슬람교를 15세기경에 받아들였다. 이 지역의 불교, 조로아스터교 신자 들은 이슬람교의 박해를 받고 중국으로 피난 가거나 개종을 했다. 18세기 중반 청나라의 병합 이전 약 천 년 동안 위구르족이 신장 지역을 지배했다.
중국은 조선족을 포함 56개 소수민족이 있다. 위구르족은 현재 약 1200만 명으로 독립 열기가 가장 높은 종족이다. 1911년 청나라 멸망 후 분리 독립을 여러 번 시도했다. 장개석과 모택동 군대가 내전을 벌이던 1940년 카슈가르를 수도로 '동투르키스탄' 국가를 선포했다.
그러나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 군대가 1949년 신장에 진입함에 따라 독립 국가는 실패하였다. 20세기 말에도 독립을 지지하는 대학생시위가 카슈가르, 쿠차 등에서 발생하고, 북경 등 대도시에 자살 테러 등이 있었다. 우리가 통과하는 신장성 여행은 위구르족 테러 방지를 위한 공안의 검문검색으로 마치 전쟁터를 통과하는 것처럼 긴장감이 높다.
고속도로에서 공안의 잦은 검문검색 때문에 '하미'에 오후 7시경 도착했다. 하미는 '신장 타임'이라고 부르는 북경 표준시 때문에 밤 9시 이후에도 해가 훤하다. 하미에서 저녁 식사는 K 회장이 스폰서를 하였다. 오늘이 회사 창립 35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처음 직원 4명에서 현재는 1천 명이 넘는 중견기업이라고 한다. 모두 축하 박수를 쳤다.
하미의 식당에서 민물고기찜, 자라고기찜(처음 먹어봄), 찹쌀과 갈비를 섞어 만든 밥 등 이채로운 식사를 즐겼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에 귀한 민물고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직원에게 물어봤다. 북쪽의 알타이산맥 근처의 호수에 사는 민물고기라고 한다.
아침 '하미' 호텔 방에서 멀리 장엄한 사막의 일출을 본다. '하미'의 특산물은 '하미과'가 유명하다. 하미과는 참외와 수박의 중간 크기이다. 우리가 먹는 멜론과는 다르다. 하미과는 황제의 진상품으로 유명해졌다. 적당한 당도,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과질, 과향이 독특하게 맛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a34010ebf0fbe6.jpg)
하미 멜론이 유명해진 것은 과거 당나라 황제의 식탁에 '멜론'이 올라왔다. 임금이 어느 지역에서 보내온 것인지 환관에게 물었다. 환관은 엉겁결에 '하미'입니다. 라고 답했다. 이후부터 더운 여름철 하미 주민은 멜론을 장안으로 보내야 하는 고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휴게소, 노점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미과, 수박을 많이 사 먹었다. 사막의 기온은 40도가 넘지만, 그늘은 건조해서 견딜만하다.
중국은 과일을 '근'으로 파는데 한 근이 500그램이다. 우리는 한 근이 600그램이다. 휴게소에서 하미과를 먹기 좋게 깍두기처럼 잘라 플라스틱 컵에 담아서 판다. 가격이 10위안(1900원)인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 먹기에 좋다.
러시아에서 오래 살았던 윤 군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 하미과가 세계 최고라고 말한다. 우즈베크의 타슈켄트 도로변에서 하미과를 샀는데 크기도 중국 신장 하미과보다 크고 당도가 훨씬 높았다.
오늘 우리는 하미에서 투루판까지 오늘 400여 킬로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야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어려운 곳', '죽음의 사막'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사막이다.
면적이 33만에서 37만 평방킬로미터로 남쪽은 곤륜산맥, 북쪽은 천산산맥으로 둘러싸인 '타림분지' 안에 있다. 오후 일찍 도착하여 투루판의 유적지 관광을 위해 아침 8시 반 일찍 하미를 출발한다. 투루판에서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고창고성 등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아야 하므로 빡빡한 일정이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멀리 천산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를 보면서 지나간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일 년에 수십 미리 오는 비를 맞으며 사막을 한 시간 이상 비를 맞으려 달린다. 멀리 5000, 6000m 이상 높은 천산산맥은 눈이 내린다.
비가 오자 사막의 기온이 40도에서 20도 아래로 뚝 떨어진다. 대륙성 날씨는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다. 과거 실크로드 상인들과 구법승들의 어려움을 체험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735de24b9dd0ad.jpg)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도로 양옆으로 수십 킬로 이어지는 '풍력발전기' 대단지이다. 대량 설치에 따른 '규모의 경제' 때문에 원가가 우리의 1/3보다 작다고 한다.
풍력발전기로 생산된 전력으로 수백 킬로 떨어진 천산산맥에서 물을 끌어오고, 현지 주민에게 낮은 가격의 전기를 공급한다. 남는 전력은 산업시설이 많은 동쪽으로 보내도록 설치된 고압전선이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다.
과거 타클라마칸 사막의 악명 높은 바람의 이름은 '카라부란'(검은 바람)이라고 부른다. 사막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낙타는 상인들에게 '사막의 배'로 불린다. 낙타는 사람보다 모래폭풍 '카라부란'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상인들은 낙타 옆에 숨어서 무서운 모래폭풍 '카라부란'으로부터 생명을 지켰다고 한다. 쌍봉낙타 한 마리는 80킬로에서 100킬로 짐을 싣고, 하루에 30여 킬로 이동한다고 한다. 낙타는 20여 일 물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보통 5일에 한 번 물을 먹는다고 한다.
실크로드 상인의 낙타 방울 소리를 마음속으로 들으며 아시아의 서쪽으로 달리고 있다. 옛날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민들은 아이들 손목에 작은 방울을 달아 주었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와서 아이를 모래로 덮거나 바람에 날려가면 아이를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
옛날 주민들을 힘들게 만들던 사막의 바람이 이제는 돈이 되는 신재생에너지가 되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고속도로는 수십 킬로씩 길게 직선으로 만들어져 운전에 졸음이 온다. 졸음과 더위를 쫓으러 휴게소에서 1970년대 먹었던 추억의 '아이스 케끼'를 자주 사 먹는다. 값도 매우 저렴하고, 여행의 지겨움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고속도로는 모래바람이 불어와서 도로를 메꾸는 것을 막기 위해 바람 부는 방향에 모래 방지 턱을 설치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여름방학 철을 맞아 중국인 가족 여행객들이 매우 많다. 중국 여행객은 집에서 가져온 컵라면, 빵 등을 식당에서 먹는다. 중국인은 대체로 부모, 자녀(1명 또는 2명), 조부모 등 5명으로 되어 있다. 아직도 부모에 대한 효심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슬람 신자가 많은 서쪽으로 갈수록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 샤슬릭을 많이 판다. 만두 속의 고기도 주로 양고기이다. 휴게소 화덕에서 굽는 '란' 빵 냄새가 고소해서 식욕을 일으킨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e2bec267b83d57.jpg)
기름진 중국 음식을 매일 먹으니 설사도 하고 몸이 안 좋다.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쌀밥 한 공기에 고추장 한 숟가락으로 충분하다. 고추장은 정말 한국인에게 '영혼의 음식'임을 실감한다. 아내는 식욕이 없다며 고추장 한 숟가락과 밥 한 공기를 먹으며, 살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이 느끼는 작은 행복이 이런 것이다.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투루판, 쿠차, 카슈가르' 등 서쪽으로 갈수록 고속도로에서 공안의 검색이 빈번하고, 강도도 높다. 열심히 속도를 내어 달려가면, 검문소에서 공안의 검문으로 짧게는 5분, 길게는 20여 분 소모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오후 세 시경 '투루판' 외곽에 도착하니 서유기 소설에 나오는 '화염산'의 붉은 산맥이 보인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붉은 민둥산이다. 투르판 근처에서는 여기저기 유정(油井)에서 원유를 캐내는 '메뚜기'(생김새가 메뚜기처럼 닮았음) 장비가 원유를 캐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이 중국을 자원 강국으로 만들고 있는 풍경이다.
투르판은 6, 7세기 '고창왕국'이 있던 지역이다.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법사와 고창국 왕(국문태)의 만남(서기 629년)으로 유명하다. 고비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미'에 도착한 현장 스님 소식을 고창국 왕이 듣게 된다. 고창국 왕은 현장을 투루판으로 모셔 와 불법을 듣고 극진하게 대접한다. 서역 국가의 여러 왕에게 소개장을 써주고, 재물을 충분히 주고, 수행원과 우마 지원 등 천축으로 가는데 많은 편의를 제공하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136409dadd302f.jpg)
명나라 오승은이 16세기 쓴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 지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위구르어로 화염산은 '붉은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투루판은 과거 불의 도시 '화주(火州)'로 불렸다. 연간 일교차가 78도가 된다고 한다. 여름은 혹서 더위, 겨울은 혹한 추위의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서유기' 소설에 손오공이 '우마왕' 요괴와 싸우기 위해 '파초선'을 빌려와서 화염산 불을 끄는 장면이 나온다. 서유기 소설의 배경인 '화염산'은 사진 찍는 관광 코스의 하나이다. 우리는 오후 화염산 매표소에 도착했다. 7월 말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기온이 섭씨 45도이다. 투루판은 해수면 이하 저지대 지형이라 여름철 더위가 혹독한 지역이다.
화염산 매표소 근처에 가보니 높이 20미터의 긴 장막으로 화염산을 가려 놨다. 돈 내고 입장권을 끊어서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만,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중국판이다.
화염산에 등산이나 트래킹 가는 것도 아니고, 도로 옆에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돈을 받는 처사가 못마땅해서 우리는 입장권을 사지 아니하고 화염산을 옆에서 보면서 그냥 지나쳐서 고창고성, 교하고성 등으로 향했다. 돈을 너무 밝히는 중국의 관광 정책에 멀리 이국에서 온 여행객의 기분은 찝찔하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출 장면.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9214052e0a4af4.jpg)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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