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는 단연 김(金)씨다. 특히 김씨 가운데서도 단일 본관 기준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계파는 김해(金海) 김씨로 확인된다.
![김해 김씨는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포함된 본관이다. [사진=유튜브 @상생방송STB]](https://image.inews24.com/v1/64aad74788f781.jpg)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김씨는 전체 인구의 약 21.6%인 1068만9959명을 차지한다. 그중 김해 김씨는 445만6000명으로, 본관 중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이는 김씨 전체의 약 42%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렇다면 김해 김씨는 왜 이토록 많은 것일까?
우선,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한 김씨 계열이라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해 김씨의 시조는 가야 건국의 주역인 김수로왕으로, 그의 즉위 연도는 서기 42년이다. 반면 신라계(경주·광산·강릉·연안) 김씨의 시조로 알려진 '김알지(金閼智)'는 서기 65년에 처음 기록에 등장한다. 문헌상 최초로 확인되는 김씨가 김수로왕인 만큼, 이른 시기의 출발이 후손 확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김해 김씨는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포함된 본관이다. [사진=유튜브 @상생방송STB]](https://image.inews24.com/v1/a4cd6130f38564.jpg)
김해 김씨가 신라 왕실과 맺은 전략적 결합도 또 다른 요인이다. 김해 김씨 출신인 김유신 장군은 자신의 여동생을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에게 출가시키며 왕실과 인척 관계를 형성했고, 이를 통해 김해 김씨는 신라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 혼맥은 김해 김씨를 지역 명문에서 왕권의 핵심 인척 세력으로 끌어올렸고, 이후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또, 조선시대에는 외국 출신 인물이 귀화하면서 김해 김씨로 편입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였던 '사야가(沙也可)'는 조선에 귀순한 뒤, 김해 김씨 본관과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선조에게 하사받았다. 이후 그는 조선에 정착해 후손을 남겼고, 그의 계보는 오늘날 '사성(賜姓) 김해 김씨'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외부 계통의 흡수는 김해 김씨 인구의 외연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지역적 특성과 집성촌 문화도 김해 김씨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관인 김해는 낙동강 유역의 교통·농업 요지로, 조선시대 이후 김해 김씨가 대규모로 정착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강한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본관 의식을 유지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뒤에도 '김해 김씨'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이어가며 세력을 늘렸다.
![김해 김씨는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포함된 본관이다. [사진=유튜브 @상생방송STB]](https://image.inews24.com/v1/e0605b04261262.jpg)
아울러, 1909년 일제가 시행한 '민적법(民籍法)'도 이에 관련이 있다. 과거 조선인의 신분과 가족 관계를 체계적으로 등록하게 되면서, 성씨가 없던 사람들도 모두 성과 본관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신분이 낮았던 이들은 자신이 섬기던 양반의 성과 본관을 따르거나, 일부 양반들은 하인을 자신의 성과 본관으로 등록해 주기도 했다.
이때 인지도가 높았던 김해 김씨와 같은 거대 성씨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수의 등록자를 확보하게 됐고, 이것이 김해 김씨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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