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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김병주 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아이뉴스24 소민호 기자] '입신양명'이라는 사자성어가 '성공'을 나타내는 등치어였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입신양명이라는 말을 그다지 자주 쓰지도 않고, 이름을 떨치는 것이 과연 삶에서 성공한 것이냐를 두고 동의하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세'했다는 얘기도 이젠 낯설어 하고, 돈을 많이 벌거나 소위 '갑질'을 하는 지위 또는 많은 이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서야만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 쉽게 수긍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돌아보면 사회가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개탄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것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부도덕하거나 탈법, 위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안양천 제방 오목교 인근에 핀 라일락. 제철을 맞아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2025.04.15.[사진=소민호 기자]
안양천 제방 오목교 인근에 핀 라일락. 제철을 맞아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2025.04.15.[사진=소민호 기자]

그래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라일락 향기처럼 환대 받는다. 구글 제미니는, 사회 고위층이 보여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사례로 '흉년에 제주도민에게 쌀을 나눠준 거상 김만덕'이나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등을 꼽는다. 네이버 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등의 가훈을 지킨 경주 최씨 부잣집'과 '주식 투자로 큰 부자가 된 이후 매년 수조원 대의 돈을 기부하고 있는 워런 버핏'을 사례로 든다.

AI 플랫폼마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뽑아낸 노블리스 오블리주 사례를 보여주지만, 사실 가히 천문학적 부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급여에서 소소하게 떼어내 여러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다.

이런 와중에 국내 부호 1위를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엎치락 뒤치락 경쟁하는 것으로 알려진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의 소식이 들려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기에 처한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사재출연을 약속한 후 1000억원 규모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그의 가족이 최근 홈플러스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전단채) 투자자들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김 회장 가족은 '모르는 사람이 집 앞에 전단지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 불안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경찰은 전단지를 붙인 사람들에 대해 협박 등의 혐의로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자택을 찾아 전단지를 붙인 이들은 "피해자의 절박함을 호소하거나 감정을 담은 내용"이라며 "집안의 고요와 평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4019억원 채권 반환 권리는 침해하고 떼어먹으려 하면서 자신의 권리는 털끝 만큼도 침해받지 않겠다는 옹졸함에 쓴 웃음만 나온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실 전단채 투자자들은 절박한 심경으로 보인다. 평생 일하고 받은 퇴직금을 안전한 상품이라고 권유받아 투자했다는 이들은 채권 변제가 중단된 이후 만기가 지났어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구책을 마련하기보다 서둘러 회생신청을 하며 전단채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다. 금융채권이 아니라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해 우선 변제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다급한 마음이라고 거주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권리는 없어 보인다. 다만 국내 부호 1위의 지위까지 오른 주인공의 윤리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의 대주주로서 경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노블리즈 오블리주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형마트 2위 기업의 신용을 믿고 수백억원대의 전단채에 투자한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경찰에게 억누르도록 하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안양천 제방 오목교 인근에 핀 라일락. 제철을 맞아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2025.04.15.[사진=소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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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호 기자(sm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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