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노릇노릇한 김치전이 보름달을 닮은 흰 접시에 보기 좋게 담겼다. 그러나 주부라면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김치전보다 흰 접시다. 바삭한 호떡이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초코시럽을 등에 업고 자태를 뽐내도 시선은 이미 육각형 모양의 독특한 그릇에 뺏겼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윤식당 그릇'이라고 입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CJ오쇼핑의 PB 브랜드인 '오덴세'는 CJ E&M의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의 테이블웨어로 등장한 후 그야말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윤식당 시즌1이 방영됐던 지난해 상반기 오덴세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30% 폭증했다. 시즌2가 방송 중인 현재도 각종 여성 커뮤니티에는 '윤식당 그릇을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CJ오쇼핑과 CJ E&M이 만나 성공한 브랜드는 더 있다. CJ오쇼핑은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누나'와 '꽃보다할배'에서 이승기와 이서진이 각각 착용해 화제가 된 '퍼스트룩 아웃도어'와 '드페이 블랙'을 단독 론칭, 국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 2014년에는 CJ E&M의 뷰티 전문 프로그램 '겟잇뷰티'를 홈쇼핑버전으로 각색해 '쇼핑 겟잇뷰티'를 론칭하기도 했다.
양사 합병으로 이 같은 협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비단 PPL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가 예상된다. 예컨대 중국의 1인 미디어 창작자인 '왕홍'이 중국 홈쇼핑과 이커머스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처럼 CJ E&M의 MCN(멀티채널네트워크) 사업 역시 CJ오쇼핑의 비디오커머스와 만나 홈쇼핑 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난항을 겪고 있는 CJ오쇼핑 해외사업이 CJ E&M발 한류 열풍을 타고 활기를 띌 가능성도 높다. 업계에서는 CJ E&M의 제작역량과 CJ오쇼핑의 풍부한 현금흐름이 더해지면 글로벌 타깃 콘텐츠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또 CJ E&M의 모바일 플랫폼을 바탕으로 미국 1위 홈쇼핑업체 QVC의 '모바일 전용 1분 홈쇼핑'과 같은 콘텐츠를 개발할 수도 있다.
미래 성장 동력 마련에 골머리를 앓던 홈쇼핑업계는 CJ오쇼핑의 합병 소식에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다. 성장이 정체된 현 상황에서 CJ오쇼핑이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메리츠종금증권에 따르면 2015년부터 TV홈쇼핑 성장 동력으로 여겨졌던 T커머스 부문의 추가 성장도 올해부터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이를 키우겠다고 야심차게 추진한 해외사업은 대부분 구조조정됐고, 모바일 사업에서 비전을 찾겠다 나섰지만 홈쇼핑뿐 아니라 모든 사업자가 뛰어든 시장이다 보니 성과를 내기가 녹록지 않다"며 "모든 홈쇼핑사가 본업이 아닌, 아예 새로운 사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토로했다.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 역시 이 같은 고민과 무관치 않다. 앞서 CJ오쇼핑은 정체에 빠진 홈쇼핑 사업 돌파구를 TV 밖의 차별화된 콘텐츠에서 찾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웹 드라마, 예능 콘텐츠 등을 선보여 왔다. 다만 그동안의 노력들이 파편적으로 이뤄져왔다면, 이제 미디어 커머스 기업이라는 큰 축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으로 홈쇼핑업계 2위였던 CJ오쇼핑은 확고부동한 1위에 오르게 됐다. 업계 판도가 바뀐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시너지를 내긴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콘텐츠 제작·유통 역량이 중요해지는 만큼 상호간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큰 파급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종 업계로 부럽고 무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물론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CJ오쇼핑이 CJ E&M의 성장을 위한 '캐시카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CJ그룹이 '국내 최초 융복합 미디어 커머스 기업'을 표방했으나 사실상 방점은 '미디어'에 찍혀 있어 CJ오쇼핑이 벌어들인 수익이 CJ E&M 투자에 쓰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남준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7년 기말 기준 CJ오쇼핑의 예상 순현금은 1천억~2천억원 규모로, CJ헬로와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더하면 약 5천억~6천억원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는 CJ E&M이 추진 중인 드라마 콘텐츠 사업 확대 및 테마파크 운영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CJ E&M은 문화기업을 꿈꾸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총애하는 계열사로 알려져 이같은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CJ오쇼핑이 홈쇼핑업계를 넘어 국내 커머스 사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아니면 CJ E&M의 성장을 위한 도움닫기 역할만 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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