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매서운 추위가 물러가고 완연한 봄 날씨가 찾아온 20일 오후 6시께 서울 광화문광장. 봄이 다가왔지만, 혹독한 추위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다. 성동조선해양 노동자들은 이날 광장 한켠에서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침낭을 펼치며 자신의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 조합원 100여명은 이날 광장에서 1박2일 농성을 시작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성동조선 노동자들은 정부의 구조조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일부 노동자는 '기다림의 결과가 법정관리?'라는 현수막을 펼쳐 들었고 또 다른 노동자는 시민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일 성동조선에 대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공식화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오전 서울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채권단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성동조선은 지난 2010년 경영난으로 3조8천억원의 빚을 갚지 못하면서 채권단 자율협약(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당시 채권단은 '청산하는 것이 낫다'는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를 받았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출입은행을 필두로 한 채권단은 다른 회계법인에 실사를 맡겨 성동조선을 존속시켰다.
이후 회사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2010년 1천600억원이던 영업적자는 매년 늘어나면서 2014년 3천300억원을 기록했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무역보험공사와 우리은행 등이 채권단에서 대거 이탈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만 보다가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막대한 혈세만 낭비됐다.
정부가 회계법인의 실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면 상황이 이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중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년 전 성동조선은 선박수주 RG발급을 위해 은행과 키코(KIKO)를 체결했다. 하지만 키코 사태가 터지자 은행들은 성동조선에 지원을 끊었다.
강기성 성동조선지회장은 "성동조선은 수주활동을 했지만, 정작 수출입은행이 이를 막고 있다고 폭로했고 수출입은행도 이를 인정했다"며 "국민의 혈세 10조를 썼다는데 정작 노동자 퇴직금 적립률은 낮다. 키코 사태로 인한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왜 노동자의 잘못인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성동조선 사태 당시 수출입은행장이던 김동수 전 행장, 김용환 전 행장, 당시 금융위원장·기재부 장관 등 어느 누구도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가장 약자인 노동자들만 길거리로 내몰리며 일자리를 잃게 됐다.
물론 노동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태가 이지경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경영진, 채권단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난 8년간 진행된 구조조정이 왜 실패했는지 철저한 분석과 함께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우리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경영에 실패한 경영자와 채권단은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제 가족은 이제 누가 먹여 살려야 합니까." 한 노동자의 이같은 외침이 2018년 봄을 맞아 더욱 가슴아프게 울려 퍼졌다.
이영웅기자 her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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