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해서는 1년 동안 미국 정부에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장비를 수입하도록 허용하면서, 두 회사는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양국의 패권경쟁에 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양사는 1년간은 별다른 추가 절차 없이 장비를 수급할 수 있어 중국 내 생산에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같은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앞서 상무부는 지난 7일 중국의 반도체 기술 확보를 막으려고 미국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새로운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중국 내 생산시설이 중국 기업 소유인 경우에는 이른바 '거부 추정 원칙'이 적용돼 수출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다.
다만 외국 기업이 소유한 생산시설의 경우에는 개별 심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경우 외국기업으로 공장을 증설하고 새로운 장비를 반입할 때는 미국과 협의를 거쳐야 했다.
국내 기업들은 전면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 과정에서 이전보다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점, 앞으로 첨단 공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중국 공장에 대해선 1년간 건별 허가를 받지 않아도 장비를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사실상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한 것으로 한국기업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재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어 여러 장비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장비가 많아 건별로 승인을 받으면 복잡한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조치로 급한 불을 끄게 된 셈이다.
다만 1년이라는 기간이 유예됐기 때문에 규제가 어느 시점에 적용될지는 불투명하다. 또 한국 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과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미국 오스틴에 공장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충칭에 생산기지가 있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곳에만 주력하긴 힘들다는 얘기다.
미국은 바이든 이전인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중국의 자존심인 화웨이의 판매 거래를 제한하며 중국과 각을 세웠다. 한국 업체들도 대형 고객사인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데 제동이 걸렸다.
바이든 정부도 반도체 전략에 있어선 트럼프 정부와 노선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기업을 불러 반도체 회의를 열며 기업 기강잡기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도 예비 회의를 열고 출범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중국이 한국 참여와 관련해 불만이 높아지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이같은 미국의 강경책이 지속될 수 있고 중국도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도 한국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승인하지 않는 등 규제를 동원해 우리 업체들의 세 확장을 막을 수 있다. 중국은 2018년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를 불허해 두 회사의 M&A를 무산시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중 분쟁으로 화웨이 등이 제재를 받으면서 우리로선 최대 고객사를 잃었다"며 "화웨이에서 다른 고객사로 전환하는 데 수 년이 걸렸는데 요즘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전환 시대에 직면해 있고 공급망의 다원화 및 중복은 필수 사안"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의 자체 공급망 안정화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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