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LG그룹을 시작으로 5대 그룹이 연말 인사에 돌입했다. 글로벌 복합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단행되는 정기 인사다. 그만큼 '안정 속 혁신'을 기조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재들로 대거 교체되는 분위기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지난 23일 LG화학을 시작으로 이틀에 걸쳐 ㈜LG와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열고 인사안을 확정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18년 최장수 CEO'로 주목받던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LG그룹의 '4인 부회장' 체제는 무너졌다. 또 당장의 위기 극복만 염두에 둔 '안정형 인사'에 그치지 않고, 신규 임원의 92%를 40~50대 초반으로 구성해 신사업을 끌고 갈 수 있는 혁신형 인재를 계열사 곳곳에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또 배터리를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을 맡고 있는 LG전자 VS사업본부,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 등에서 신규 임원 및 승진자가 많았단 점에서 구 회장의 '미래 준비'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엿보였다는 평가다. 소프트웨어 포함 R&D 분야에서 신규 임원 31명을 선임한 것도 이의 일환이란 평가다.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19명의 외부 인재를 영입해 기존 조직에 새로운 시각을 접목할 수 있도록 했다. 구 회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영입한 외부 인재는 총 86명이다.
주요 계열사 조직개편엔 '고객 가치 중심' 등 구 회장이 중시하는 경영 철학도 반영됐다. LG전자가 본사 직속 CX(고객경험)센터를 신설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고객경험을 중시하는 전략 및 로드맵 제시, 고객경험 혁신, 상품·서비스·사업모델 기획 등을 총괄한다. 수장은 디자인경영센터장 출신인 이철배 부사장이 맡았다.
여성 CEO들을 처음 발탁한 것도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의 퇴진으로 이정애 CEO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박애리 지투알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CEO에 선임됐다. 이정애 CEO와 박애리 CEO는 재계 4대 그룹 유력 계열사에서 첫 여성 전문경영인 CEO에 올랐다. LG의 여성 임원 수는 구 회장이 취임한 2018년 29명에서 올해 64명으로 늘었다.
주요 CEO들은 대거 유임되면서 '안정 속 혁신' 기조도 돋보였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등 주요 계열사 핵심 임원은 유임됐다.
LG그룹 관계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고 5년, 10년 뒤를 내다보는 미래 준비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해 임원 인사 역시 일관성 있게 '미래 설계'에 초점을 맞췄다"며 "R&D, 고객 경험은 물론 생산, 구매, SCM, 품질·안전환경 등 분야를 망라해 철저히 미래 경쟁력 관점에서 인재를 선발했다"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 승진 이후 첫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안정'보다는 '쇄신'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중 패권경쟁 격화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맞이하면서 부사장급을 중심으로 한 중폭 이상의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회장은 다음달 초 단행될 예정인 '2023 사장단 및 임원 인사' 초안을 최근 보고 받았으나,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갑자기 사임한 이재승 전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의 후임을 골자로 한 이번 인사안을 탐탁치 않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이 대대적인 변화와 쇄신을 우회적으로 주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은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과 DS부문장인 경계현 사장의 '투 톱' 대표이사 체제는 1년 더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장단 역시 이재승 전 사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소폭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부사장 급에선 작년처럼 능력을 검증받은 젊은 리더가 대규모로 부사장급으로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또 60세 이상 임원은 2선으로 물러난다는 이른바 '60세 룰'을 앞세워 내년 만 60세 이상이 되는 부사장급 인사 30명가량이 대부분 교체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킬 지도 관건이다. 컨트롤타워가 다시 생기면 최소 9명의 임원이 더 필요한 상황인 만큼 인사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새 컨트롤타워는 이재용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정현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팀장(부회장)이 이끌 가능성이 높다. 정 부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된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진단팀장과 인사지원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SK그룹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12월 초에 관계사별로 순차적으로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내외 경영환경을 고려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핵심 경영진은 대부분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장동현 SK(주)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2017년부터 해당 계열사에 몸담았지만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터라 올해도 유임이 유력하다. 최태원 회장이 신임하고 있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SK그룹의 ICT 사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은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네트웍스나 SK케미칼 등 일부 계열사 대표들은 내년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어 거취가 주목된다. 더불어 그룹 핵심사업인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관련해 차세대 인재를 발탁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차그룹은 통상 12월 중하순께 실시했던 인사 시기를 앞당길 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과 급격한 경기 위축을 선제 대응하기 위해 올해엔 12월 초중순쯤으로 앞당겨질 가능성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 인사에서의 관전 포인트는 부회장직의 부활 여부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3년차에 접어들며 세대교체가 마무리된 만큼 정 회장의 의중을 반영하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고위 경영진이 배치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또 지난해 사상 최대규모인 203명의 신규 임원을 선임해 정 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안정화를 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선 현대차의 인사·재무를 총괄하면서 제네시스 사장까지 맡고 있는 장재훈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당초 이달 24, 25일에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최근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시기가 다음달 초·중순으로 늦춰졌다. 이번 일의 시발점이 된 롯데건설의 하석주 대표가 돌연 사의한 후 후임이 지난 23일 결정된 것이 영향을 준 것이다.
롯데그룹의 정기 인사 폭은 이번 일로 예상보다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이영구 롯데제과 대표,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 이갑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대표, 최경호 코리아세븐 대표, 황영근 롯데하이마트 대표, 김교현·황진구 롯데케미칼 대표 등이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도 이번 인사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일각에선 그룹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사장단 연령대가 대거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신동빈 회장 장남 신유열 상무의 인사도 주목된다. 신 상무를 지원하기 위해 바이오·배터리·전기차 등 신사업 부문에서 대대적인 외부 인재를 수혈할 지도 관심사다.
재계 관계자는 "각 그룹들이 글로벌 복합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는데 방점이 찍히며 '안정 속 혁신'을 추구하는 인사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며 "대부분 이미 핵심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데다 위기 상황에서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하지 않았던 전례를 감안하면 중요 포지션에서의 변동은 올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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