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감 속에서도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던 삼성전자가 최근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올해도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실적 부진이 심화될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프리미엄 제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기술적 감산(자연 감산)'에 들어갔음을 은연 중에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반도체 생산라인의 최적화와 차세대 제품 공정 전환 등을 진행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출하량이 줄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 년간 반도체 생산라인에 웨이퍼 투입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한 전례가 없다. 반면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은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고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지난해 4분기부터 공급 축소에 나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그동안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강조했는데, 최근 들어 업계 안팎에서 삼성이 '기술적 감산'에 들어갔다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며 "경쟁사들처럼 감산에 동참하지 않는 것에 대해 DS 경영진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인위적인 감산은 없고, 투자는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감산 여부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글로벌 소비 위축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로 주력 제품인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고객사의 주문량 급감으로 메모리 반도체 재고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0월 D램(PC향 범용제품 기준)과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22.46%, 3.74% 떨어졌다. 11월에는 보합세를 보이다 12월에 다시 하락했다.
수요 감소 탓에 재고자산도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57조3천19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8.5% 늘었다. 전년 동기보다는 51.6% 증가했다. 이 탓에 지난해 3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1.4% 감소한 5조1천560억원에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업체의 감산에도 PC 제조사는 9~13주, 스마트폰 제조사는 5~7주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라며 "향후 재고 처리 과정에서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현재 미주총괄)은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감산 계획을 묻자 "현재로선 (감산) 논의는 없다"며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라고 답한 바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지난 6일(현지 시각)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시설 투자 감축 계획에 대한 질문에 "아직까지 줄이겠다고 공식 발표한 적도 없고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며 감산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전략은 경쟁사의 감산 효과가 나타나는 올 하반기까지 손실을 버티면서 다가올 호황기에 얻을 이익을 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경쟁사 대비 양호한 수익성과 풍부한 현금을 기반으로 반도체 다운사이클을 견딜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만큼 공급을 유지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반도체 업황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선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올해 설비투자가 감소한다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확장하겠다는 기존 전략은 다소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글로벌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 생산업체인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크게 줄여야 수급이 안정되고 가격도 하락세를 멈출 수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하락해 손익분기점 수준까지 떨어진 만큼, 삼성전자가 공급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 대신 '기술적 감산' 카드를 꺼내든 모습이다. 신제품과 초격차 기술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심산이다.
이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차기 D램 제품인 DDR5와 데이터센터·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또 생산라인 공정 전환과 최적화로 출하량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삼성전자 내부에선 올해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 목표를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25조4천509억원(증권사 추정치 평균)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세트(완제품)까지 망라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며 "덕분에 사업부문별 협의를 통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경쟁사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웨이퍼 투입을 줄이지 않아도 출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이크론 등 경쟁 업체가 (인위적) 감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만 '경쟁력 있는 가격 정책'으로 재고 수준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며 "제조원가 절감과 공정 최적화, 정확한 수요 예측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 없이도 재고 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업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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