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며 미국에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기업의 한국 내 대규모 투자를 이끌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동안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활발했던 반면, 미국 기업의 국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이었던 만큼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가 어떤 영향을 줄 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25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FTA 발효를 기점으로 양국 간 투자 규모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대미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FTA 발효 전(2004∼2011년) 평균 34억8천500만 달러에서 발효 후(2012∼2019년) 평균 100억4천80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또 한국의 전체 해외직접투자에서 미국은 25%를 차지해 가장 규모가 컸다.
반면 미국의 한국 직접투자 금액은 2004∼2011년 평균 12억200만 달러에서 2012~2019년 평균 28억7천600만 달러로 늘어나긴 했으나, 우리나라가 미국에 투자한 것에 비해선 증가세가 다소 미미했다.
◆韓 기업만 더 퍼주는 이상한 투자…美 일자리만 활성화
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2002~2011년 439억 달러에서 2012~2021년 1천495억 달러로 3.4배 확대됐다. 그러나 미국의 대한국 투자액은 같은 기간 243억 달러에서 480억 달러로 배 가까이 늘었으나, 한국 대미 투자액의 3분의 1수준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박 3일간 방한했을 때 지갑을 더 크게 연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총 105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의 '통 큰' 미국 투자를 발표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방한 마지막날 직접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현대차그룹은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 일정 중에도 SK온과 미국 조지아주에 총 50억 달러(한화 6조5천억원)를 들여 배터리 합작 법인도 설립키로 했다. 양사는 지분 각 50%씩을 보유할 예정이다. 2025년 하반기 가동될 예정인 합작 공장은 연간 35GWh(기가와트시)에 달하는 배터리를 생산 할 수 있는 규모로, 연간 전기차 30만 대 분량의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도 미국 투자에 최근 들어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하반기 가동할 예정인 미국 테일러시에 위치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에 250억 달러(약 33조원)를 투자키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향후 20년에 걸쳐 총 1천900억 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하는 중장기 계획도 검토 중이다.
이 외에 롯데그룹은 지난해 미국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인수하고 향후 10년간 2조5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한화그룹도 약 2천억원의 추가 투자를 통해 1.4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한화는 지난 2019년부터 조지아주에 미국 내 최대 규모인 1.7GW 태양광 모듈 공장을 가동 중이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등에 1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다만 부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현지시간) 별도의 브리핑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만 해서 지난 2년여 동안 한국은 미국에 1천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며 "그것은 미국 전역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尹 "韓 투자 관심 가져달라"…바이든, 美 투자만 '관심'
반면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때도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사례는 넷플릭스가 꺼낸 1억 달러(약 1천333억원) 정도가 전부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에도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보다 미국에 투자해달라는 요구만 쏟아냈다. 그나마 양국 상무장관 주재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반도체·배터리·청정에너지·디지털 분야 기업 16곳이 참가해 교역과 투자 확대 등의 논의만 있었을 뿐이다.
당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지만, 이후 미국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서도 한국 투자 유치 계획을 내놓은 것은 아직까지 넷플릭스 밖에 없는 상태다. 넷플릭스는 4년간 K-콘텐츠에 25억 달러(약 3조3천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날 현대차그룹과 SK온이 합작 법인 설립 발표와 함께 공개한 대미 투자(총 50억 달러) 규모에 비해선 절반 수준에 그친다.
재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 측의 한국에 대한 투자보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만 더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다"며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에 상응해서 미국 측에서도 앞으로 투자를 많이 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윤 대통령이 적극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동맹국인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도 이번에 함께 강조해나갈 필요성이 있다"며 "미국과 한국 모두 전략 산업이 반도체와 자동차라는 점에서 해당 기업 총수들과 함께 미국을 찾은 윤 대통령과 우리나라 정부가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 논의할 시 '투자 보류' 등의 방법으로 협상 카드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지금과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아세안 국가들이나 비동맹 국가들이 미국으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나라 역시 미국만 바라보고 갈 것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과 다양한 이해 관계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우리나라 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미국과 호혜적인 관점에서 공급망 재편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이번에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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