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 방중으로 북·중 정상이 다시 손을 맞잡았다. 전승절 행사에 나란히 선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각자의 필요를 위해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전통적 북·중 혈맹을 과시했다.
이로써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뒷배'를 확보하며 안보와 경제라는 쌍두마차를 동시에 챙길 동력을 얻었다. 그래서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 즉 '안러경중(安俄經中)' 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할 지렛대를 손에 넣었다.
중국 역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한이라는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며, 한반도 영향력과 대미 협상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한국이다.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가 선명해지면서 한국은 더욱 불리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북·중·러는 달리는데 남북은 제자리다. 냉전 시절을 연상케하는 불편한 현실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한은 적어도 올해 말까지 남한과 관계 개선 의지가 없다"고 전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민간인 대북 접촉을 전면 허용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등 유화 제스처를 내놨지만, 북한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조차 "현재로선 대북 대화 재개에 묘안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창의적 접근과 전략적 인내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상호 필요가 맞닿는 분야, 곧 철도·농업·보건·관광 같은 생활·경제 협력부터 열어가야 한다.
특히 이번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방중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남북 및 동아시아 고속철도 건설이 주요 의제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베이징까지 5시간 반, 이 노선이 현실화되면 남북 관계는 물론 동북아 교통·물류 질서가 송두리째 바뀐다. 이것은 단순한 철도 교통망이 아니라, 분단을 넘어서는평화의 선로이자 한반도의 미래 전략이다. 한국 정부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또 하나의 기회는 북미대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원산갈마지구 국제 공동 개발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미 협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강릉∼제진 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관광·산업적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관광은 총칼 대신 카메라가, 군화 대신 여행화가 오가는 가장 안전한 협력의 문이다.
다가오는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도 주목해야 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속이 참석한다면 한·중,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관계 개선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중 전략 경쟁 한가운데에서이재명 정부가 전략적 밀당과 새로운 협상 프레임을 제시한다면, 남북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실질적 의제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남북관계는 언제나 국제정세의 파도에 흔들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한 파도가 아니라 거대한 소용돌이다. 북·중·러는 밀착하고, 한·미·일은 동맹을 강화하며, 한반도는 격랑의 한가운데 서 있다. 바로 지금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순간이다.
남북고속철도 건설과, 금강산과 원산 관광 재개는 남·북과 미·일, 중·러가 공존하는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그 출발점을 과감히 열어간다면, 한반도는 신냉전의 굴레를 벗어나 협력과 공존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기 광명시장 [사진=양기대 전 의원] [사진=양기대 전 의원 제공]](https://image.inews24.com/v1/e4548742a985c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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