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5개 나라에 영업법인을 두고 있다. 폴란드에는 자체 공장이 있고, 80개국에 수출한다. 북한에도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된다. CNN의 화면을 보니 후세인궁에도 납품됐다고 한다. 디지털TV 셋톱박스 하나로 벤처창업 21년만에 1조원 매출을 돌파한 벤처기업 휴맥스 변대규 사장의 얘기다.
국내에는 전혀 기반이 없던 사업이었다. 유럽을 1차 공략지로 삼았다. 자체 브랜드로 유럽을 공략하겠다고 덤비니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사업을 넓히는 대신 주력 아이템으로 사업지역을 넓혀가기로 했고, 틈새에서 시작해 메인으로 들어간다는 논리와 결정들이 맞아 떨어졌다.
89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선후배 6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현 휴맥스(당시 건인시스템)이다. 창업 첫 해인 89년 매출은 1억2천500만원. 그러던 것이 2008년 7천819억원, 2009년 8천27억원을 거쳐 창업 21년만에 6천배로 성장했다. 이로써 휴맥스는 80년대말 등장한 벤처 1세대 기업으론 처음으로 1조원 매출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 사이 직원숫자는 11명에서 713명(2010년 말 기준)으로 늘었다.
변대규 사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TV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생각지 못한 변수에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새 제품 새 시장. 늘 도전했던 시간들이었다. 지나고 보면 옳은 결정이었지만, 당시 선택의 순간은 항상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면서 "다만 반칙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실패해도 정직하게 실패하자며 덤볐다"고 회상했다.
디지털가전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대에 휴맥스는 셋톱박스라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매출이 5천억, 6천억원을 넘어가자 내부의 효율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는 "내부 조직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즈음 느꼈다"고 말한다. 매출 100억원 기업이 1천억원 기업이 되고나면, 규모에 걸맞게 일하는 시스템과 기술수준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4~5년간 내부 혁신에 매달렸다. 정체된 성장은 내부혁신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시 매출도 증가세를 타기 시작했다. 변 사장은 "이제는 조금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운영혁신에 성공했다. 그래서 강한 회사가 됐다"고 말한다.
'벤처기업 매출 1조원'에 대한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후배들에게' 혹은 '대기업에게' 한말씀 해달라는 주문이 쏟아진다.
"저는 벤처협회에서 일할 당시 정부와 사회, 언론에 인프라 구축을 해달라고 뛰어다녔습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이제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됐다고 봅니다. 지금은 벤처들이 성과를 국민들에게 보여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휴맥스의 성공을 위해 올인하고 있어요."
평소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현재의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에 대해서는 할말이 적지 않다. 휴맥스가 국내시장을 버리고 해외시장에 올인한 것 역시 '술 사주고 밥사주고 돈 주고' 영업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경영자가 의도적으로 중소기업을 못살게 굴겠습니까. 실무자들은 실적을 올려야 하니까 당연히 (중소기업에) 못되게 굴 게 돼 있어요. 그래서 대기업 경영자들이 (중소기업과의 상생문제에) 철학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핸들링 해야 합니다."
그는 반대편의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스스로 경쟁력이 떨어지니 교섭력이 떨어지고, 이렇게 된 것은 업계의 과당경쟁이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 사장은 '네 탓' 논쟁보다 '늙은 경제'로 주저 앉은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해 더 걱정했다. 대기업은 갈수록 커지고 중소기업은 갈수록 정체되거나 쪼그라들고 있는 현실을 경계하는 것이다.
"젊은 경제라는 건 큰 기업이 망할 수도, 작은 기업이 큰 기업될 수도 있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구조적으로 변화가 없는 늙은 경제에요. 과연 이게 건강한 경제의 모습인지 안타깝습니다."
변 사장은 '따라하기' 수법으로 미국 시장을 장악한 일본이 정작 미국을 따라잡고 나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일본에 잡힌 미국에선 구글이나 애플 같은 창의적이고 세계적인 기업들이 다시 생겨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일본에선 혁신적인 기업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
"우리나라도 삼성이나 포스코 처럼 따라가기를 잘하는 기업들이 있어요. 그런데 (미국을 따라잡은) 일본의 90년대 즈음이 되면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미국처럼 혁신적인 기업들이 나타날까, 일본같이 혁신을 찾기가 어려워질까요."
그는 법제도적으로, 산업의 생태적으로 볼 때 우리 시장이 너무 많이 독과점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일본을 따라갈' 확률이 훨씬 많다는 시각이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문제도 '중소기업이 힘드니 잘해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구조를 깨야 한다는 인식 아래 바라봐야 합니다."
변 사장은 "휴맥스라고 하면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이름을 얻고 싶다"며 "나중에 휴맥스는 능력있는 CEO가 경영하도록 하고, 홀딩스를 통해 투자할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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