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리 기자] 국내 전자책 산업이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전자책 시장은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폭발적 확대로 전자책 콘텐츠 수요가 늘면서 올해 본격적인 시장 확대가 예고된다. 이에 제2의 아마존을 꿈꾸는 콘텐츠 유통업체 뿐 아니라 그동안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던 출판사들도 전자책 시장에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 확대를 방해하는 여러 걸림돌들이 여전히 존재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산적해있다.
미국 아마존으로부터 불어온 전자책 열풍이 올해 국내에도 거세게 불어 닥칠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채널이 등장하면서 전자책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국내 전자책 시장의 가장 큰 업체였던 북토피아가 파산 선고한 이후 답보 상태를 유지하던 전자책 시장으로서는 올해가 재도약의 시기인 것이다. 한국전자출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천278억원, 2009년 1천323억원, 2010년 1천975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가 올해 처음으로 2천억원을 돌파, 2천891억에 달할 전망이다.
기업들도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현재 교보문고의 전자책 하루 매출은 1천500만원을 넘는다. 전자책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2006년 첫 날 판매 금액인 1만9천360원에 비해 500배 이상 성장한 것. 지난 1분기 전자책 판매량도 전년 동기보다 6.4배 성장했다. 예스24도 1분기 전자책 다운로드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96배 늘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존재한다. 현재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1천만명이 넘어섰고 올해에는 2천500만명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태블릿PC는 현재 80만대에서 200만대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등 전자책 콘텐츠 업체와 출판사들도 부지런히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파피루스와 종이를 거쳐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역사는 진화하고 있다”며 “올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이 광범위하게 보급될 것으로 볼 때 전자책 시장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빠르고 더 넓게 확산돼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 지적도… 우선 해결과제 산적 국내 전자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전자책 열풍에 동참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콘텐츠 자원이 한정돼있기 때문.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는 전자책과 종이책의 동시 출간이 일반화돼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베스트셀러나 신간 등 인기도서의 전자책 콘텐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혹은 콘텐츠를 내려 받더라도 종이책을 단순히 파일 형식에 맞춰 변환하는 수준에 그쳐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종이책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출판사들의 보수적인 인식과 함께 저자들도 아직 전자책 시장에 확신이 없어 유통업체에 콘텐츠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또한 유통업체들도 부족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수급하려다보니 질보다 양에 치중하면서 전자책 콘텐츠의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문화부 출판인쇄산업과 조상준 행정사무관은 “출판사들이 직접 전자책을 만들고 그 콘텐츠 유통을 유통사에 맡기는 게 옳다”며 “현재 전자책 시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정된 콘텐츠 자원도 문제다. 국내 종이책의 경우 해외번역도서가 30%를 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출판사에 투고되는 창작원고의 경우 95%가 사장돼왔다. 특히 해외번역도서의 경우 2차 저작권 문제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 전자책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전환되더라도 콘텐츠 부족 현상은 지속되는 것이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해외 도서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면서 의존도가 높지만 더 이상 목을 메면 안된다”며 “사장된 95%의 원고를 흡수할 수 있는 셀프 퍼블리싱으로 국내 창작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마존의 경우 개인 저자·작가들에게 셀프 퍼블리싱 지원으로 아만다 호킹이라는 26세 인디문학 작가가 2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장 사무국장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미 검증된 아마존이나 애플의 모델도 의미 있지만 그 모델이 국내에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며 “오히려 각 기업의 장점과 자원을 살려 소비자 욕구에 맞는 특화된 비즈니스 전략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예컨대 최근 해외도서의 라이센스 전면 도입을 선언한 인터파크의 모델이나 자기 주도적 독서교육프로그램을 바탕으로 1년 약정시 e잉크 단말기를 무료 제공하는 대교출판의 모델, 누구나 셀프퍼블리싱을 할 수 있는 지니소프트의 오픈마켓 ‘유페이퍼’ 등을 대표 사례로 볼 수 있다.
선순환 생태계 조성위해 협력해야
전자책 산업의 특징은 콘텐츠, 단말기, 솔루션, 통신네트워크 분야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융합산업이자 신산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삼성, LG, KT 등 대기업과 교보문고, 인터파크, 한국이퍼브 등 유통사, 한국출판콘텐츠 등이 전자책 산업에 참여하면서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단말기 업체나 통신 업체가 유통플랫폼 사업에 진입하기도 하고 콘텐츠 업체가 유통플랫폼과 단말기 영역을 포괄하기도 하는 등 전자책 어느 분야나 기업 간 경쟁과 긴장이 팽팽한 상황이다.
교보문고 박영준 E-커머스사업 본부장은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할 수 잇는 유통채널을 얻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양질의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 확보한 콘텐츠를 얼마나 다양한 기기에 지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들은 경쟁 구도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선순환적인 발전구조를 창출한다. 마치 살아있는 자연 생태계처럼 전자책 시장을 중심으로 콘텐츠, 단말기의 동시 성장을 통해 시장이 확대된다.
정부는 전자출판산업의 선순환구조 환경 조성을 위해 전자책 콘텐츠 유통관리 체계를 확립키로 했다. 또 전자출판 콘텐츠 공정거래 환경도 마련하고 해외진출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전자책 콘텐츠 직거래 장터 활성화도 도모할 계획이다.
문화부 조상준 사무관은 “선순환적인 생태계 조성이 우선돼야 전자출판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며 “정부도 이를 위해 관련 법제도 개선과 이용자들의 편의 향상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1인 출판’ 전자책 콘텐츠 확대 핵심 키워드
국내 시장의 경우 단말기와 통신, 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반면 콘텐츠 부문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그 이유는 콘텐츠 분야의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이책 기반의 출판산업도 지속적인 양극화로 인해 중소출판사들이 설 자리를 잃어왔다. 국내 출판사 3만여 개 중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8.7%인 2천700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종이책 발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출간을 하지 못하는 무실적 출판사가 92%를 차지하고 있는 것.
하지만 콘텐츠 부족이 국내 전자책 시장 확대에 최대 걸림돌로 지적되면서 1인 출판이나 중소출판사들이 콘텐츠 다양화를 위한 핵심 카드로 떠올랐다. 1인 출판은 대형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저자나 작가 등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통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나 업계는 콘텐츠 발굴을 위해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니소프트, 북씨, 바로북 등 중소 유통업체 뿐 아니라 교보문고, SK텔레콤, KT 등도 오픈마켓을 만들거나 계획 중에 있다. 이들은 개인이 하기 힘든 전자책 변환 솔루션을 1인 출판자에게 지원하고 콘텐츠 확보와 판매의 장으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지니소프트의 경우 현재 1만여 작가 및 회원을 보유한 ‘유페이퍼’라는 전자책 오픈마켓을 운영 중이다. 사이트 내에서 회원들은 e퍼브 기반으로 전자책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만들어진 콘텐츠들은 유페이퍼 내에서 유무료로 독자들에게 팔린다.
북씨는 ‘빅북’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1인 출판사의 콘텐츠를 앱북 형태로 제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판매 지원을 함께 한다.
문화부에서는 1인 출판사 창업 촉진을 위해 매년 50개 기업에 창업, 제작, 유통에 대한 총괄적인 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전자출판 아카데미 창업자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전자출판협회의 공동제작 시설을 활용해 전자책 제작을 지원키로 했다.
특히 협회의 전자출판교육센터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유비쿼터스출판아카데미’ 교육을 진행 중이다. 수강생이 매년 200명 수준에 머물렀었지만 올해는 1천여명이 몰리는 등 내년부터는 대량의 전자책 콘텐츠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1인 출판사나 중소출판사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대형 출판사의 공세에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의 아이북스, 킨들이나 전자책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유통채널이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miracl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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