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의 슈퍼판매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 대다수가 야간이나 공휴일에 약국이 문을 닫아 감기약 등을 사는 데 적지 않은 불편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대부분은 이들 의약품의 슈퍼 판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어 법안 심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이를 두고 내년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이 약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감기약 등의 슈퍼 판매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지난 1월 한국소비자원에서 실시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조사결과인 71.2%보다 높은 수치다. 또 '야간이나 휴일에 약국이 문을 닫아 약을 구입할 때 불편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78.3%나 됐다.
약사들의 복약 지도 역시 실제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48.0%가 지난 1년동안 가정상비약을 구입할 때 실제 약사로부터 사용방법을 설명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험이 없다'는 응답도 절반이 넘는 50.5%에 달했다.
'가정상비약을 사용하다가 부작용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2.9%(29명)에 불과했다. 이 중 22명은 '부작용이 가벼워 저절로 나았다'고 답했고 '저절로 낫지 않아 병원 또는 약국을 방문했다'는 응답자는 7명이었다.
시민단체들도 약사들의 복약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가정상비약 슈퍼판매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17부터 열흘간 전국 당번약국 3천629곳 가운데 380곳을 방문해 조사한 결과, 당번약국의 공휴일 실제 운영률이 16%에 불과하고 복약지도 없이 약을 판매한 약국도 93%에 달했다"며 약사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약사들이 안전성을 문제로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실제로는 대부분의 약국에서 복약지도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국회 복지위 의원들이 약의 안전성을 이유로 약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데 대해서도 "안전성 운운하며 해묵은 논쟁을 반복하려 한다"며 "이는 법 개정 이후 의약품 재분류 과정에서 엄격한 기준 마련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감기약 등의 슈퍼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4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으며,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1차 관문인 복지위를 넘어야 한다.
복지위는 오는 7일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종합감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국감 일정을 마치는 대로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복지부는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상반기부터 감기약 등의 슈퍼 판매를 허용한다는 방침이지만, 복지위 소속 여야 의원 대부분이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드러내고 있어 법안 심의 과정에서 한 차례 진통이 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 24명 가운데 약사법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밝힌 의원은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 정도다. 한나라당은 홍준표 대표까지 나서 지난달 2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는 적절치 않다"면서 반대 입장을 공표한 바 있다.
보건복지위 민주당 간사인 주승용 의원은 "복지위 위원 대부분은 반대 입장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이 찬성하는데 왜 반대하냐고 하지만 (슈퍼 판매 등을 통해) 약 오남용이나 중독 방지 등의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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