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기자] '한국 부자 서열 3위', '회사 경비도 못 알아본 은둔형 경영자', 'M&A의 귀재'
넥슨 창업자인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를 표현하는 다양한 말이다. 워낙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에 왠지 차갑고, 까다로운 사람일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김정주 대표는 유머러스하고 말 하기도 좋아하는 경영자였다. 본인이 은둔형이 아니라고 강조하거나 "엔씨소프트 김택진 형님이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 때면 이 사람이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에 이은 한국 부자 서열 3위 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김정주 대표는 6일 대구 노보텔에서 열린 KOG 아카데미 특별강연을 마친 후 KOG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약 2시간 동안 자신의 게임 철학과 인생 이야기, 넥슨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김택진 대표는 만나지도 못했어요"
아무래도 이날 가장 관심이 큰 이슈는 지난 6월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엔씨소프트에 대한 것이었다. 지분 인수 이후 처음으로 갖는 공식석상. 엔씨소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엔씨소프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분 인수 이후에 김택진 형님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화나 문자도 잘 안되요. 이 형님이 워낙 바쁘고 문자를 보내도 씹어요(웃음). 나중에 연락이 올텐데 아직 연락이 없으시네요."
김정주 대표가 세간에 알려진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다. 엔엑스씨의 자회사인 넥슨(일본법인)이 도쿄 증시에 상장하면서 주식 평가액만 수조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 생활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좋은 게임회사를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요. 아직 제가 하고 싶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을 보인 소년, 컴퓨터를 만나다
지금은 '게임왕'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김정주 대표지만 처음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원래 그가 처음 재능을 발휘한 분야는 음악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이 좋았어요. 피아노도 쳤고 바이올린도 꽤 오래도록 배웠죠. 바이올린으로는 콩쿠르에 나가서 1등도 해봤답니다. 지금도 관악기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에는 클라리넷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주 대표는 지난 1979년 이화경향콩쿠르에 출전해 초등학생 바이올린 부문 1등을 차지했다. 만약 계속 음악에 매진했으면 '게임왕'이 아니라 '음악왕'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업으로 삼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사업에 지쳐 힘들때 도피할 수 있는 취미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김정주 대표를 게임으로 이끈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컴퓨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당시 교보문고에 컴퓨터가 하나 등장했어요. 거기서 줄을 서서 컴퓨터를 만져보곤 했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부터 컴퓨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의 매력에 빠진 소년은 결국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자계산학과 대학원까지 다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쌓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님'이라고 부르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는 1년 선후배 사이, NHN을 창업한 이해진 의장과는 카이스트 기숙사 룸메이트로 연을 맺었다.
"김택진 형님은 정말 하늘 같은 선배죠. 그러니 문자를 '씹혀도' 뭐라 할말이 없어요(웃음). 해진이는 룸메이트라서 많이 붙어 다녔어요. 해진이가 밤에 음식을 시켜서 남기면 제가 쓰레기 처리반 처럼 처리했던 사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은둔형? 나는 누구보다 바쁜 사람"
흔히 김정주 대표를 표현하는 말 중에 '은둔형 경영자'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 출근하지도 않고 주로 e메일로 업무를 처리하고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주 대표는 스스로 '은둔형'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지 누구보다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넥슨에 제가 꼭 있어야 할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회사에서 제 사무실을 없앴죠. 회사 경비가 절 못 알아봐서 쫓겨났다는 얘기도 사실 많이 과장됐죠. 전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단지 출입증이 없어서 못 들어갔다 정도 아니었을까요."
사무실에 자리가 없어지면서 김정주 대표는 누구보다 바쁘게 국내외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좋은 게임,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간다.
최근에는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핀란드 개발업체 로비오도 다녀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게임업체도 방문했다. 6일 강연을 하게 된 인연인 KOG 이종원 대표를 만나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대구도 수차례 다녀갔다.
"전 오라고 하는 곳은 대부분 다 가는 편입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외국의 시골에 있는 업체들도 가봤습니다. 최근에는 핀란드 로비오에 가서 순록고기로 끓인 스튜도 먹어봤고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텐센트의 모회사도 만났고 미국에 이름도 잘 모르는 시골도 다녀왔어요.
◆"카카오톡과 앵그리버드 보고 배워야"
김정주 대표는 최근 모바일게임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카카오톡과 게임하기 플랫폼의 성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카카오톡이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상을 할 수 없었죠. 하지만 5천만 사용자를 모으더니 게임으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런 새로운 것,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로비오를 다녀왔는데 신작게임인 배드피그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새들의 공격에 발끈한 돼지들의 반격이라는 콘셉트가 참 기발하지 않습니까?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었더라고요."
김정주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의견도 내놨다. 닌텐도나 EA처럼 한순간에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는 사태가 넥슨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로비오의 앵그리버드 대성공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아 보였다.
"지금 아이들이 마리오나 피카츄를 알까요? 몇년전만해도 피카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텐데요. 지금은 앵그리버드가 훨씬 유명하고 더 파괴력도 큽니다."
◆"나는 게임에 미쳤다, 다시 태어나도 게임 사업한다"
게임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김정주 대표에게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을 할 것 같냐고 물었다. 어렸을때 재능을 보인 음악인이나 다른 사업 이야기를 기대하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다시 태어나도 게임사업을 할 것이다'.
"저는 게임에 미친 것 같아요. 게임의 마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요. 게임 사업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제 의견에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게임사업은 제조업과는 달라요. 제조업은 100을 투자해서 인건비를 줄여가며 이익율을 올린다고 해도 120이나 130 정도를 벌겠죠. 실패해도 80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은 100을 투자해서 실패하면 0을 건져요. 정말 남는게 하나도 없죠. 하지만 성공하면 200이나 300을 넘는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이런 도박적인 면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게임사업을 할 것 같아요."
김정주 대표와의 긴 만남이 끝나고 나니 불현듯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
여전히 배고픈 김정주 대표와 넥슨의 글로벌 게임시장 평정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대구=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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