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보호무역주의 신호탄일까? 아니면 표준특허와 상용특허에 대한 정책 차이일까?"
아이폰4 등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삼성에겐 같은 선물을 안겨주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갤럭시S와 갤럭시 탭 등 삼성 초기 모델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판결을 그대로 수용했다.
이에 따라 ITC에서 수입 금지 판결을 받은 갤럭시S 갤럭시탭 등 삼성 제품들은 9일 자정부터 미국 내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보호무역' 비판보다 '표준특허 규제'에 더 무게
오바마의 이번 행보는 지난 8월 아이폰 등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당시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선 1987년 이후 26년 만에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만큼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가 ITC의 삼성 제품 수입금지 판결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기업 간 공방에서 자국 기업만 보호할 경우 편파적이란 비판이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끝내 삼성 제품의 수입금지는 구제해주지 않았다. 오바마는 왜 애플과 달리 삼성을 위해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걸까?
이번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선 표준특허와 상용특허의 차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준 특허란 특정 제품을 제조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특허를 의미한다. 표준특허권을 남용할 경우 독과점을 비롯한 각종 불공정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표준특허권에 대해선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 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상용특허는 특이한 모양이나 기술 등 제품의 특징과 관련된 특허다. 표준특허와 달리 상용특허는 모양을 다르게 만들거나, 다른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특허에 비해선 특허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여지가 좀 더 많은 편이다.
그 동안 미국은 유럽에 비해 표준특허 규제에 대해 다소 느슨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법무부와 특허청이 연초부터 표준 특허권에 대해 강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와 특허청은 지난 1월초 표준 특허권 관련 소송에선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26년 만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주도한 마이클 프로먼 USTR 대표도 어빙 윌리엄슨 ITC 회장에 보낸 4쪽 짜리 문건에서 "법무부 등의 견해를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FTC 역시 필수 표준특허가 침해당했을 때는 몇몇 특별한 경우 외에는 판매금지 처분 대신 금전으로 배상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USTR "두 기업 국적은 고려 대상 아니었다"
삼성이 이번에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한 것은 미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ITC가 아이폰4 등 애플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판결을 할 때 이슈가 된 건 주로 3G 통신 특허였다. 오바마가 이 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때 명분으로 내세운 건 표준특허였다. 표준특허권에는 비차별적인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FRAND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는 걸 분명히 한 셈이다.
반면 ITC가 삼성 갤럭시S 등에 대한 수입금지 판결을 할 때는 터치스크린과 오디오 헤드셋 인식 관련 특허가 주 이슈였다. 이 특허들은 대표적인 상용특허로 꼽히는 것들이다.
오바마가 이번에 갤럭시S 등에 대한 수입금지 판결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이런 차이를 감안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위임을 받고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 마이클 프로먼 미국 국제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프로먼 대표는 이날 "삼성과 애플 모두 미국 경제에 중요하게 기여했으며, 혁신과 기술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준 기업들이다"면서 "이번 결정 과정에서 두 기업의 국적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쨌든 오바마의 이번 결정으로 삼성은 미국 시장에서 차별 조치를 받은 셈이 됐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최근 정책 기조를 볼 때 '자국 기업 보호' 때문이라고만 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삼성 입장에선 앞으로 표준특허 관련 소송 땐 ITC를 통한 수입금지보다는 연방법원 등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게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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