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기자] 갑을관계 구조 개선 논의 확산에 편승해 IT서비스 업계를 겨냥한 하도급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 하도급 금지 법안이 발의되는 등 다단계 하도급 문제 근절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IT서비스 업계는 일방적 다단계 하도급 금지 논의는 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공론형 규제라고 지적한다.
IT서비스 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과는 다르게 하도급이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하도급 계약의 공정성 확보와 사업예산 및 소프트웨어 사업 대가 체계 개선, 소프트웨어 인력 근무여건 개선 등이 선행돼야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소프트웨어 인력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측은 "정당한 사업대가 지급과 근로여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발주관행의 혁신 및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지난 1일 사업금액의 50%를 초과하는 하도급 금지, 하도급 계획서 사전 제출 및 발주자의 승인 의무화, 할인율(수수료) 5% 초과 금지, 표준하도급 계약서 사용 의무화 등을 골자로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도급 없애는 건 IT서비스 산업 전체를 죽이는 꼴"
전통적으로 시스템통합(SI)에서 출발한 IT서비스 산업은 하도급 조달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발주처로부터 종합 IT서비스 기업이 사업을 수주하고 전문 IT서비스 기업은 종합 IT서비스 기업으로부터 하도급을 받는다. 전문 IT서비스 기업은 다시 소프트웨어 기업과 도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반적이다.
종합 IT서비스 기업은 마케팅과 영업, 프로젝트 관리, 품질관리, 분석 및 설계,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조달, 하도급 계약 등을 수행한다. 따라서 컨설팅과 테스팅,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고객이 원하는 IT 모형을 설계해 주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도급 업체의 경우 네트워크 구축이나 하드웨어 제조, 코딩, 유지보수, 솔루션 및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종합 IT서비스 기업이 짜놓은 설계에 맞게 솔루션을 개발하고 코딩과 하드웨어 구성 등을 수행한다.
물론 종합 IT서비스 기업이 하도급 업무를 모두 담당할 수는 있다. 코딩 인력과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네트워크 통합 인력 등을 영입해 전체 IT서비스 사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전문 역량을 보유한 중견·중소 IT서비스 기업과 특정 솔루션을 보유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설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종합 IT서비스 기업 입장에서도 하도급을 주지 않으면 인력 운용의 불균형과 프로젝트별 솔루션 개발로 더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IT서비스 산업은 수직구조를 통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종합 IT서비스 기업들은 전문 역량을 보유한 파트너사들과의 협력 관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으며 중소 IT서비스 기업 및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보다 많은 사업 기회 확보를 위해 종합 IT서비스 기업들과 손을 잡고 있다.
IT서비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IT서비스 분야의 파트너들은 IT서비스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의 협력사들보다 원 사업자와의 유대관계가 낮은 게 사실"이라며 "IT서비스 기업들은 파트너사들과의 공고한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다양한 상생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IT서비스 산업에서 하도급 비중이 높은 이유는 잘할 수 있는 분야라 판단되면 외주를 맡겨 효율성을 도모하려는 업계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하도급을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W와 IT서비스가 같은 산업?
특히 IT서비스 업계는 하도급 문제를 규제하려는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IT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산업은 내용과 성격 자체가 전혀 다른데도 이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해 동일한 법에서 규정하려다 보니 정책의 왜곡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의 IT서비스 정의에 따르면 IT서비스는 ▲최적의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조직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해당분야의 업무와 사업의 부가가치를 제고하며 ▲IT를 기반으로 기존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선 소프트웨어 산업을 소프트웨어의 개발·제작·생산·유통 등과 이에 관련된 서비스 및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등과 관련된 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우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 완성본을 유통시키는 구조지만 IT서비스는 프로젝트별로 최적화시켜 플랫폼을 제공하는 방식이라 서비스업에 가깝다. 그러나 IT서비스의 경우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활용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IT서비스는 자체 지적재산을 갖고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산업과는 다르게 하도급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의 개념이 다른게 현실이지만 현행 법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서 이 둘을 모두 관장하고 있어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는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관계자는 "IT서비스 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업 특성과 비즈니스 모델이 서로 다른 별개의 산업"이라면서 "IT서비스의 한계생산비용은 시간이 지나도 일정하지만 소프트웨워의 생산비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감소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서로 다른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하도급 구조 자체보다 사업대가 현실화가 먼저"
이에 따라 IT서비스 업체들은 구조화된 다단계 하도급 자체 보다 사업 예산 현실화와 소프트웨어 사업 대가 체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통의 IT서비스 사업을 예로 들면 만일 A회사가 10억원 규모의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를 발주한 경우 프로젝트를 수주한 B회사는 발주금의 일부분을 중견 개발회사 C에 하도급을 준다. C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또 다른 중소업체 D에 재하도급을 준다. 보통 3~4단계 하도급까지 내려가면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D회사는 프리랜서 개발자와 직원들에게 개발 업무를 맡기며 나머지를 수익으로 챙기는 형태다.
IT서비스 산업에 대한 하도급 금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같은 재하도급 과정에서 최하위에 있는 개발자들은 극심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원 사업자가 받는 10억원에 훨씬 못미치는 급여를 받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IT서비스 업계는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노임단가 체계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아 이같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항변한다.
정부에서 정한 소프트웨어 사업대가 기준은 하한선임에도 그 의미가 변질돼 현재는 상한선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IT서비스 사업 범위 대비 낮은 예산이 관례적으로 편성되고 있고 저가 발주가 일반적이어서 하도급에 따른 저임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IT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사업 범위에 상관없이 발주처가 예산을 일괄적으로 삭감하고 있고 저가 발주가 일반화돼 있다"면서 "현행 기술자 노임단가 체계는 투입원가 보전 방식이 아니라 기술력과 가치(Value)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단가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 해결이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구조적 저가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자 선정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빈번한 과업 변경에 대한 대가 지급이 되지 않고 있어 수익성 악화와 근로자 처우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규모 대비 부족한 사업 기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도급 업무를 담당했던 한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발주처가 행정 처리에 사업기간을 소비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간은 별로 되지 않았다"며 "충분한 사업 기간 확보 없이는 양질의 시스템 구축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연장근무나 휴일근무 등에 대해서 시간 보상을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면서 "하도급 제도 자체보다는 교육이나 휴가 등을 인정하지 않는 발주처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관용기자 kky144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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