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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윈도XP와 '별에서 온 그대'


[김익현기자] 이젠 살던 별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 지구에서의 삶은 마무리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기뻐해야 할 순간. 하지만 도민준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떠나기 싫다.

사랑하는 천송이를 홀로 남겨두기가 두렵다. 자기가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아서다. 배우인 그가 다른 남자와 키스 신이나 백허그 신을 찍는 것도 못 마땅하다.

결국 떠났던 도민준은 수시로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졸지에 천송이는 시간여행자의 아내 노릇을 하게 됐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나오는 얘기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판타지 드라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단종을 앞둔 윈도XP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별그대’ 얘기에 공감이 갔다. 떠날 날을 받아놓은 ‘연인’ 윈도XP와 도민준이 자꾸 오버랩됐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윈도XP가 이 별을 떠날 날도 4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 2001년 이 별에 왔으니, 꼬박 13년 가량 우리와 함께 했다. 다른 윈도 종들을 생각하면 떠날 때가 됐다. 아니 너무 오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윈도XP가 너무나 사랑스런 존재란 점이다. 도민준이야 천송이 한 사람만 남겨놨지만, 윈도XP는 아직도 수많은 천송이를 거느리고 있다. 윈도 비스타를 비롯한 후속작들이 도무지 사랑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스태티스타(Statista) 자료에 따르면 윈도XP는 여전히 윈도 종족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점유율이 무려 30%에 이른다. 최근작인 윈도8은 10%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점유율 50% 남짓한 윈도7이 없었더라면 13년 째 선두 노릇을 할 뻔했다.

윈도XP를 단종시킬 수밖에 없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2001년 출시된 운영체제(OS)를 여태 유지해 온 것만도 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뒤 나온 제품들이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한 데 있다. 그러다보니 ‘XP’가 떠날 경우 그 빈자리가 너무 커 보일 것 같다.

당장 윈도XP를 쓰는 사람들은 각종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 악성코드, 제로데이 공격, 해킹 등 보안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윈도XP가 실행되는 하드웨어 문제로 인한 시스템 오류와 비즈니스 중단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시중 은행에 설치돼 있는 ATM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ATM엔 아직까지 윈도XP가 깔려 있다고 한다.

◆ "키스신도 싫고, 백허그 신도 싫다"는 도민준의 걱정은 약과

자, 다시 ‘별그대’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 별을 떠나는 도민준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천송이가 ‘키스신이나 백허그 신을 찍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우스개소리이긴 했지만, 진심도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떠나는 윈도XP가 남기고 간 문제는 단순히 키스신이나 백허그 수준이 아니다. 비유가 다소 그렇긴 하지만 거의 불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도민준은 가끔 시간여행이라도 해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윈도XP는 떠나면 끝이다. 더 이상 보안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최신 윈도로 업그레이드하면 되지 않냐”는 말은 의미가 없다. 그건 천송이한테 “도민준 말고 다른 남자 사귀면 되지 않냐”고 하는 것과 똑 같다.

‘별그대’가 많은 ‘전지현 팬’과 ‘김수현 앓이족’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날. 난 엉뚱하게도 윈도XP를 떠올리게 됐다. 아무래도 윈도XP는 내게 ‘별에서 온 그대’였던 모양이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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