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노동 수요가 일자리 확대보다는 기존 노동자의 임금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거리가 늘어나도 기업이 채용을 더하는 대신 기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더 주고 노동을 더 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규직 보호 강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파악됐다.
이는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대일 겸임연구위원(서울대 교수)이 통계청의 광업·제조업조사에서 추출된 제조업 중분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김 교수 분석에 의하면 생산성 충격에 의해 유발된 산업별 노동수요의 증가는 지난 2006년까지는 해당 산업의 고용 증가 효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는 그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산업별 노동수요 증가가 해당 산업의 임금을 증가시키는 효과는 전 기간에 걸쳐 어느 정도 유지됐다.
생산성 충격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졌으나, 임금에 미치는 효과는 갈수록 강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생산성 충격시 자본투입에 대한 효과는 증가하는 추세로, 기업들이 생산성 충격에 노동보다는 자본투입 조정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산성 충격에 대한 고용조정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대신, 근로자 1인당 자본투입액에 의한 조정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생산성을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기업들이 자본투입을 확대했지만, 고용은 증가하지 않고 임금만 빠르게 인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인적자원 배분기능 효율성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특히 정규직 고용보호수준이 강화된 점에 기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생산성 충격 요인이 발생했을 때 상용직(정규직)은 고용이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임금만 유의하게 반응했다. 이와 달리 비상용직(비정규직)은 임금 변동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용만 크게 반응해 고용조정이 비상용직에 집중됐다.
김 교수는 "경제위기 이전까지는 고도성장에 따라 노동수요가 지속 확대됐고, 대기업의 암묵적인 평생직장 관행도 정립돼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가 노동시장의 인적자원 배분에 큰 장애로 작용하지 않았으나,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대기업도 퇴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용보호 요구가 크게 강화됐고, 실제 정리해고 법제화 과정을 통해 정규직 고용보호 강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 경직화는 우리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함으로써 성장에 장애요인이 되고, 양극화 심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며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아 노동수요가 위축되는 산업의 근로자들을 가급적 원활하게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정된 노동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임금격차 등의 사회적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노동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를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 수준을 완화하는 한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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