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이사(ISA)하라고? 할 만한 거야?"
'이사'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봄맞이 이사철 얘기가 아니다. 오는 14일부터 판매가 시작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얘기다. 절세 기능이 크고 잘만 활용하면 수익성도 높을 거라며 벌써 '만능통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ISA는 정말 누구나 꼭 만들어놔야 할 상품일까? 우대금리 등 경품에 눈이 팔려 무턱대고 덜컥 가입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으면서 여유자금이 있는 투자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원금보장을 반드시 원하는 소심한 투자자도 앞으로는 예·적금을 들 때 ISA 계좌를 통해 가입하는 것이 무조건 남는 장사다.
◆정부가 ISA를 '강추'하는 까닭은?
ISA는 각종 예·적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결합상품, 환매조건부채권(RP)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 안에서 투자자가 원하는 비중만큼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금융상품이다.
지금까지는 예금, 적금,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해 투자하려면 매번 계좌를 새로 터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ISA는 그냥 이 계좌 하나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다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단 복잡한 '창구'를 딱 하나로 압축해 편의를 높였다.
아울러 연소득 5천만원 이하 등의 진입장벽을 두지 않고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층도 넓어졌다(금융소득과세대상자는 제외). 1인당 1개 계좌만 만들 수 있다. 연간 불입 한도는 2천만원이다.
핵심은 연간 200만~250만원의 투자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현재 모든 금융상품은 이자 또는 배당수익을 얻었을 때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ISA 계좌에서는 근로소득 5천만원 초과자는 투자수익 200만원까지(의무가입기간 5년), 근로소득 5천만원 이하자는 250만원까지(의무가입기간 3년) 세금이 없다. 200만~250만원을 넘은 금액에는 9%(지방소득세 포함시 9.9%)의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ISA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정부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 상품에 가입해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른바 '국민재산 늘리기'라는 구호 아래 ISA의 안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에서는 저금리를 업고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시대를 맞아 정책적으로 국민재산 늘리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은행 및 금융투자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입장을 조율했고, 그 결과 계좌내 수익 200만~250만원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구조로 ISA가 탄생하게 됐다. 세수를 일부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큼 국민들의 투자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저금리·저성장' 기조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과거 은행의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10%쯤 하던 시절에는 1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매달 90만원가량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이자생활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연 이율이 1.5% 정도까지 떨어진 지금은 어림도 없다.
게다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결국 남는 게 없어진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1.5%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못해도 투자 수익률이 이보다는 높아야 자산가치가 현상유지라도 한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투자자'로 거듭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ISA, 수익률 얼마 넘어야 매력 있나?
금융위원회에서는 특히 ISA를 통해 '전문가에게 맡겨서 투자하는' 간접투자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누구나 직접투자의 달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있는 직접투자 분야인 ▲주식 ▲채권 ▲주식워런트증권(ELW) ▲선물·옵션을 ISA의 투자대상에서 빼놓은 것은 이런 이유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해 "직접투자 비중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ISA에서도 직접투자를 허용하면 과도한 위험투자나 단일상품 중심 운용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또한 주식·채권 직접투자는 현재도 비과세되고 있어 ISA를 통한 세제혜택 부여 필요가 없고, ISA에서 활용유인이 낮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의 기본 원리는 '저위험 저수익' '중위험 중수익' '고위험 고수익'이다. 보다 나은 수익을 원한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투자다.
ISA의 구조를 뜯어볼수록 약간의 위험을 안더라도 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서기를 바라는 정부의 바람이 느껴진다. '세금 깎아줄 테니 투자에 적극 나서라'는 메시지를 담은 상품이 바로 ISA인 것이다.
ISA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고객이 지시하는 대로 금융회사가 투자를 실행해주는 '신탁형', 그리고 금융회사가 준비해둔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고객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고객의 돈을 금융회사가 알아서 굴려주는 '일임형' 이렇게 두 가지다.
ISA는 세금 면제라는 장점이 있긴 하나, 운용수수료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신탁형과 일임형 모두 금융회사가 투자를 대행해주기 때문에 투자자는 운용에 따른 수수료를 내야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탁형의 수수료는 최대 1%, 일임형의 수수료는 1~1.5%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상품 유형별로는 예·적금 0.1%, 펀드 0.3~0.5%, 파생결합증권 0.7~1%로 파악된다(신탁형 ISA 기준). ISA 계좌내 상품 구성에 따라 수수료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일반적인 은행 예·적금은 이자에 대한 세금 외에는 투자자가 따로 내는 수수료가 없다. 하지만 ISA 계좌를 통해 예·적금에 들면 매년 수수료를 내야 한다. ISA는 상품 편입에 따라 최소한 0.1%, 많게는 1% 이상의 수수료를 매년 꼬박꼬박 내야 하는 것이다.
연소득 4천만원으로 ISA 의무가입기간이 3년인 투자자 A씨의 경우를 가정해 직접 계산해본 결과, 수수료와 세제 혜택을 함께 생각할 경우 ISA는 최소한 수익률이 2% 이상은 되어야 투자자에게 손해가 없었다. 1%인 경우에는 세금이 없어도 3년치 수수료를 제하면 오히려 투자자가 원금 손실을 봤다.
은행에서 ISA 계좌를 만든 A씨가 매달 100만원을 ISA 계좌에 불입하되, 수수료 0.5%를 내도록 예금이나 채권형펀드 중심으로 신탁형 ISA 상품을 구성했다고 하자. A씨는 의무가입기간 3년만 채우면 ISA 계좌에서 돈을 찾을 수 있다. A씨처럼 연소득이 5천만원 이하인 사람은 투자수익 250만원까지는 세금 면제라는 점도 기억하자.
A씨가 매달 100만원을 3년(36개월)간 불입하면 원금은 총 3천600만원이 된다. 안정성을 핵심에 두고 상품을 구성한 결과 3년간의 수익률이 1.0%라면 원금에 대한 수익금은 36만원이다(3천600만원×1.0%). 3년 만기 금리가 1%인 정기예금에 들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때 A씨는 ISA 계좌에서 얻은 수익금 36만원에 대해 세금을 안내도 된다(250만원 이하 비과세). 은행에는 3년간의 운용수수료 54만원(3천600만원×0.5%×3년)을 낸다. 즉, 세금은 없었지만 운용수수료 때문에 오히려 A씨는 원금을 18만원(수익금 36만원-수수료 54만원) 손해 봤다.
ISA 가입 없이 같은 조건의 채권형펀드에 가입한 경우라면 어떨까. 세제 혜택이 없으니 원금에 대한 수익금 36만원에 대해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5만5천440원(36만원×15.4%)이 세금이다. 펀드에 기본으로 붙는 운용수수료 54만원 외에도 세금을 5만5천원 더 내는 것이다.
같은 조건으로 2%와 3%의 수익률을 가정해보면 ISA는 3년 후 수익금이 각각 18만원, 54만원이었다. 3년간 원금 3천600만원을 묶어놓고 얻는 수익치고는 썩 매력적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수익률을 6%로 높여 계산해 보니, 꽤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이 경우 ISA는 원금에 대한 수익금 216만원(3천600만원×6%)에서 수수료 54만원을 제하고도 162만원의 수익이 남았다.
같은 조건의 일반 채권형 펀드라면 수수료 54만원 외에도 15.4%의 세금(33만2천640원)을 더 내야 한다. ISA의 매력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즉, ISA에 예·적금 같은 원금을 보장하는 1~2%대 금융상품을 포함하긴 했지만, 세제와 수수료 체계상 보다 공격적인 상품에 투자해야 투자자가 그 열매를 제대로 따먹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기대수익률을 내지 못하고 원금 손실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둬야 할 점이다.
현대증권의 오재영 애널리스트는 "최대 5년간 금리형 상품에만 돈을 묵혀놓는 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며 "ISA의 비과세와 분리과세 혜택, 손익통산은 기대수익률이 높을수록 절세혜택이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투자성과를 높이는 것이 ISA계좌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투자자들, 본인 성향 고려해 ISA 가입해야
투자자들은 ISA에 가입하기 전에 반드시 본인의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맷집을 갖고 있는 투자자라면 ISA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그러나 원금손실을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투자자는 반드시 수익률을 낮게 잡더라도 계좌내 상품군을 예금과 적금처럼 원금을 보장할 수 있는 상품 위주로 구성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ISA 도입 초반인 만큼 마케팅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준비기간이 촉박하게 이뤄지다 보니 전산시스템 준비는 물론, 판매를 맡는 일선 지점의 직원들도 급히 판매자격을 갖추느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이제 ISA 계좌로 연간 수십조원의 자금이 쏠릴 전망이어서 금융사들은 무조건 ISA 계좌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영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ISA 계좌 시장규모는 연간 24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ISA는 원금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금융상품을 다루게 되는데, 금융권이 급하게 준비하면서 계좌 확보에 몰두하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대충 판매하는 '불완전판매'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당국은 이에 업계의 '오버페이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ISA 준비상황 점검회의에서 "불완전 판매 문제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며 "출시 이후 불완전 판매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금융위·금감원이 직접 미스테리 쇼핑, 불시 점검 등 현장 점검을 주기적으로, 강도 높게 시행하겠다"고 금융권에 강조했다.
ISA는 출시되자마자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품이 아니다. 향후 2년간 언제든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어서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나라와 ISA 상품 특성이 꽤 닮은 영국의 경우, ISA 출시 첫해였던 1999년에는 총 인구의 15.8%만 가입했지만, 2013년에는 37%까지 가입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영국국세청(HMRC) 자료).
현명한 투자자라면 천천히 가입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이다. 서비스 초반에 쏟아질 각종 우대금리, 고가의 경품 등 마케팅 공세에 끌려다니기보다는 금융사별 투자실력이나 서비스 수준 등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이를 비교해 본 후 가입해도 될 일이다.
경품 등에 마음이 쏠려 계좌를 트긴 했지만 몇 달 후 내 ISA 계좌를 둔 금융회사가 영 마음에 안 드는 경우라면? 걱정하지 말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로 ISA 계좌를 옮기면 된다. ISA는 계좌를 만든 후 3개월이 넘으면 계좌이동제를 통해 금융사를 바꿀 수 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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