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배기자] #. 최근 한 중소 소프트웨어(SW) 회사 대표는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연을 지인에게 털어놓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단지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평가를 한 심사위원이 SAP, 세일즈포스닷컴이 무슨 회사인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은 세계적인 SW 기업들로 사실상 SW업계에서는 '모르면 간첩'이다. 그만큼 평가자가 SW업계에 대한 이해와 자질이 없다고 느껴졌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었다. 얘기를 들은 지인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던 터라 쉽게 공감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SW) 분야 연구개발(R&D) 지원사업 평가체계를 두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체로 평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게 SW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17일 SW업계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우수한 기술을 가진 SW 기업이 R&D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과 실망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특히 기업 간 거래(B2B) SW의 경우는 더하다. 심지어 심의를 맡은 평가위원들이 SW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조차 없어 난감했다는 경험담이 적지 않게 들린다. 평가를 받는 쪽은 전문가지만 정작 평가를 하는 쪽은 비전문가인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는 것이다.
평가를 하거나 받아본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게 평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전문가 부재'를 비롯한 평가시스템에 있다.
현재 평가자는 평가 시점에 임박해 평가관리 기관이 보유한 인력풀(pool)에서 임의로 선정된다. 대부분 교수나 업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 기술 분야에 대한 합리적인 분류가 없고, 학력이나 소속기관에 대한 증명을 요구할 뿐 전문성에 대한 별다른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주먹구구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평가비 인상 등 전문가를 끌어들일 유인책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평가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한 관계자는 "IT 트렌드에 따라 빅데이터 전문가가 핀테크 전문가로, 핀테크 전문가가 다시 인공지능(AI) 전문가가 되는 것이 현주소"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중견·중소기업 R&D 평가위원 중 현장에 정통한 산업계 비율은 2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최근 R&D 정책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80%까지 확대하기로 하며 혁신을 외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내년 R&D 예산을 정보통신기술(ICT)·SW, 생명·보건의료 등 9개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은 '2017년도 정부 연구개발 투자 방향 및 기준'을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보고한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 R&D 효율화를 위해선 반드시 평가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 평가자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른 관계자는 "R&D 자율성은 과제 아이템 선정에 (지정공모가 아닌) 자유 공모가 늘면서 개선된 측면이 다소 있다"면서 "그렇지만 평가는 검증된 사람이 들어가서 해야 하는데 그런 프로세스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더 큰 문제는 정부나 평가 주관기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예산 등으로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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