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구려 유적들 중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광개토대왕릉비였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6m가 넘는 높이를 가진 이 비석은 16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압록강 바로 건너 한반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이곳, 중국 집안시에 서 있었다.
![뒤의 사람과 비교해 그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사진=평화공감 포럼]](https://image.inews24.com/v1/92a592c2a24577.jpg)
더 없이 웅장한 광개토대왕릉비
비석 벽에서는 고구려 건국 신화와 역사, 광개토대왕의 업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비석을 통해 이곳에 있었던 고구려의 역사를 느껴보고, 또 우리 역사가 얼마나 웅장한지를 직접 체험하며 1600년이 지나도 서 있는 저 비석처럼 우리의 장엄하고 소중한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고구려의 유적들은 마치 한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어 서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덕분에 우리는 태왕릉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태왕릉은 멀리서만 보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언덕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자 사람이 인위적으로 쌓아둔 건축물의 형태가 드러났다.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돌로 만들어진 묘실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묘실 문은 열려 있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안쪽 깊숙한 곳에는 두 개의 돌무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주인에 대한 논쟁이 있는 이 무덤 위엔 한국과 중국의 지폐가 여러 장 있었다. 이는 대왕을 기리는 방문객들이 소원을 담아 올려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같은 마음을 담아 한국 지폐를 올려두며 대왕의 넋을 기렸다. 무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탁 트여 있어 한때 이곳이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여권을 소지하고야 비로소 방문할 수 있다.
![뒤의 사람과 비교해 그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사진=평화공감 포럼]](https://image.inews24.com/v1/1e9e7550989f19.jpg)
돌 하나하나에 역사가 새겨진 장군총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은 장군총이다. 장군총은 광개토대왕 혹은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돌 하나하나가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가 피라미드를 연상케 한다. 무덤을 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하단의 돌들을 포함해 수많은 돌이 천년이 넘게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신비로웠다.
고구려는 무력에 강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 장군총을 보며 고구려의 정교한 건축 기술에 다시 놀라게 된다. 기계도 없는 그 시대에 저토록 견고하고 웅장하게 쌓은 무덤을 보니 그 시대 백성들의 노고가 대단해 보였고, 또한 여러 명의 힘을 합쳐 만든 거대한 무덤을 통해 왕의 권위는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우리는 마지막 고구려 유적으로 환도산성을 방문했다. 아침 일찍 환도산성에 도착하자 등산로는 고요했고, 우리 일행 외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 마치 고구려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산성에 오르기 전 들른 무덤군은 대부분 가족 무덤이라고 했다. 그 앞에서 잠시 옛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조금 더 올라가자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 나왔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한때는 왕과 신하들이 나라의 일을 논의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역사를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역사는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발로 걷고 마음으로 느낄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종대학교 김영광, 오시은, 이서현, 이은채, 임지현, 주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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