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부회장 승진 10년 만에 '공식 회장 타이틀'을 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향후 풀어가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분오열된 거대 삼성의 구심점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3개로 나뉜 한시적 태스크포스(TF) 컨트롤타워 체제를 어떤 식으로 재편할 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 돌파구 마련을 어떻게 할 지가 관건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지난 27일 공식 취임한 후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삼성의 경영체제와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다.
삼성은 지난 2014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실질적인 총수 역할이 어려워지자 2015년부터 그룹 지배구조 및 사업재편 등으로 이재용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설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펼쳤다. 당시 이 회장이 2016년부터 삼성전자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룹을 진두지휘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같은 해 말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모두 무산됐다. 이 회장이 구속 수감 등으로 경영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 이후 이 회장의 경영 복귀가 이뤄지면서 그 동안 멈췄던 삼성의 경영시계는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 회장 역시 국내외 사업장뿐 아니라 비(非) 전자 계열사 등 그룹 전방위로 광폭 경영 행보를 보이면서 회장 승진 가능성에 대한 시그널을 끊임없이 던졌다.
그 동안 이 회장은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면서 삼성 경영 체제에도 본격적으로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한 만큼, 재계에선 이 회장이 향후 오너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 동안 분식회계, 편법승계 등으로 어두웠던 과거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해 삼성이 신뢰 회복을 하고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며 "현재 분위기로 봤을 땐 이사회 중심의 경영 구조를 확립해 이사회에 의한 최고 경영자 선임 방식이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서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만들고 있는 상태로, 최종 보고서는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 회장 등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이 회장(17.97%)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다. 삼성전자에 대한 이 회장의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이 같은 지배구조 탓에 이 회장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면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야당이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 소유 구조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어 20조원 이상의 나머지 지분은 모두 팔아야 한다. 이 경우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고리로 한 지배구조가 무너지게 돼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된다.
재계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삼성전자 등으로 구성된 사업지주와 삼성생명 등으로 이뤄진 금융지주로 분할하는 '인적분할' 방식으로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만들 지도 이목이 쏠린다. 2017년 2월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폐지한 삼성은 현재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구조로는 그룹 차원의 일사불란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쉽지 않다"면서도 "그룹 컨트롤타워가 부활하면 과거 미전실처럼 회사 주요 경영 판단을 내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삼성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어려운 경영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지도 이 회장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최근 글로벌 복합 위기 여파로 삼성전자 실적이 직격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장 취임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30% 넘게 줄었고 4분기 실적 역시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실적 버팀목이었던 반도체가 휘청이는 모습을 보여 시장이 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이 회장은 최근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실적 악화와 더불어 대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규모 투자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향후 5년 동안 450조원(국내 360조원)을 투자하고 8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핵심 미래 사업으로 삼은 바이오(bio), 차세대 통신(6G), 시스템 반도체(chip) 사업을 키워 위기 돌파에 나설 것으로 봤다. 또 비핵심 계열사와 사업부를 매각·합병하는 등의 과감한 사업구조 재편도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 회장이 가장 공 들이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비전 2030'을 발표하며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선언했지만, 파운드리뿐 아니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 등에서 고전하고 있다. 파운드리에선 TSMC와의 격차가 3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 상태로 좁혀지지 않고 있고, 고객사 확보전에서도 TSMC에 계속 밀리고 있다. AP 시장에서도 '엑시노스'를 적극 밀고 있지만 성능 저하 문제 등으로 고객사들의 선택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 역시 신약 개발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천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해외 유망 바이오테크에 투자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로 키워가기엔 투자 움직임이 다소 아쉽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처럼 쌓인 과제 탓에 이 회장도 부담을 크게 느끼는 분위기다. 이 회장은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회계 부정 의혹 사건'의 오전 재판을 마치고 난 후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 많은 국민의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승어부(아버지를 뛰어 넘는다)'를 외쳤던 이 회장이 앞으로 바이오, 시스템 반도체를 중심으로 미래 사업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한 글로벌 경영 행보도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통해 일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줬다면 이재용 회장은 실용주의를 앞세워 '뉴 삼성'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 회장의 승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기술과 인재, 조직문화 등을 중심으로 한 '뉴 삼성' 작업에 속도를 내는 한편, 업무 영역이 겹치는 사업부 간 통합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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