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08년 금융회사 간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앞두고 벤처캐피털(VC) 업계가 뒤숭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아직 벤처캐피털과 관련해 법안의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 '동상이몽'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자본시장통합법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발전을 위해 득이 될 것으로 보는가 하면, 대형 금융사와 경쟁 심화 및 규제 강화 등으로 위기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벤처캐피털협회(회장 고정석)는 법안의 모습이 구체화되면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해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회원사 및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과 활발히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대-우려 엇갈려
신기술금융회사와 창업투자회사 중심의 벤처캐피털 업계는 회사 규모나 지배구조 유형에 따라 제각각인 반응이다.
일부는 대형 금융사들의 벤처투자 시장 진출로 사사로운 투자업무 관련 제한이 사라지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사 계열의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금융 관련 계열사들과 공조로 재원 확보는 물론, 투자 및 회수 업무에 있어 시너지가 확대될 것"이라며 "투자 의무비율이나 업력 및 업종에 대한 투자제한 등 번거로운 규제도 사라질 전망"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동시에 벤처캐피털 업계가 정부의 보호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제시했다.
대형 금융사들의 진출로 부실한 군소 창투사들로 구성된 업계가 자연스레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70~80개에 이르는 중·소규모 창투사들에 위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일.
대형 금융회사가 벤처투자에 나서게 되면 10명 안팎의 인력으로 구성된 대다수 창투사들은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규모에 밀려 모태펀드나 대형 기관의 출자금 쟁탈전에서 밀리는 창투사들이 적잖다.
뿐만 아니라 대형 증권회사들이 자본시장 통합으로 그간 발목을 잡았던 금융당국의 규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점과 달리, 벤처캐피털들은 새로운 '족쇄'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한 창투사 대표는 "기관이나 엔젤투자자로부터 사모형태로 투자금을 확보하는 벤처캐피털에 대해 공모형태로 자금을 모집하는 금융기관의 속성을 적용할 경우,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가 늘어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벤처캐피털 아직 '보호장벽' 필요"
벤처캐피털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업계의 우려 중 하나다.
벤처캐피털 영역이 증권·보험·은행 등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나서 대형 금융사에 모태펀드와 같은 자금을 대주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
한 창투사 심사역은 "벤처캐피털이 정부의 보호에서 벗어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벤처기업 육성과 투자시장 활성화를 위해 아직까지 창투사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민간의 자금이 충분히 벤처캐피털로 유입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창업지원법이나 벤처특별법과 같은 '보호장벽'이 일시에 사라질 경우 벤처 생태계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나 은행, 보험과 같은 대형 금융사들은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중시해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할 수 있다는 것도 벤처업계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은 벤처캐피털 분야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거리를 두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업계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기청도 이 점을 직시하고 재정경제부와 활발히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열린 벤처캐피털협회 정기총회에서 이현재 중기청장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안다"며 "벤처캐피털이 활발히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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