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명가(名家), 노키아는 아직도 세계 시장의 3분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다. 외부 우려만 있는 게 아니다. 내부에서도 CEO를 전격 교체할 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향후 시장의 중심이 될 스마트폰 분야에서 주도권을 내줬다는 불안감이 핵심이다.
그런 노키아가 총 반격에 나섰다. 오랫동안 뜸들인 전략 폰 ‘N8'을 출격시킨다. 사령탑도 전격 교체했다. 새 사령탑은 특히 캐나다 사람이다. 145년 노키아 역사에서 핀란드 이외 지역 사람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유하자면 몰락하는 유럽 축구를 구하기 위해 자존심을 접고 남미 테크니션 감독을 영입하는 식이다. 그만큼 현실이 다급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노키아는 휴대폰 명가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
◆노키아의 문제는 관료주의였다
거함 노키아가 흔들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게 관료화다. 10만 직원의 대규모 회사가 갖게 되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혁신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키아는 혁신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초반 요르마 올릴라(현재 이사회 의장)가 새 CEO에 오르며, 고무 및 목재 펄프회사였던 노키아는 통신회사로 급변한다. 이때만 해도 세계 산업의 조류를 남보다 먼저 읽고 먼저 변신할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여러 나라에서 ‘휴대폰=노키아’라는 등식이 성공할 만큼 노키아는 휴대폰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고가 휴대폰 시장에서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노키아의 위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면서부터다. 이 시점부터 세계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급격히 변했지만 덩치 큰 노키아는 늘 선제공격을 당하고 변변히 반격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지난 6월 블룸버그가 제시한 차트 한 장은 스마트폰 시장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극명히 보여준다.
2000년 노키아의 시가 총액은 2천500억 달러에 육박했다. 당시 애플의 시가총액은 200억 달러에 불과했다. 애플 같은 회사 10개가 모여야 노키아 하나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꼭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노키아의 시가 총액은 간신히 300억 달러가 넘고 애플은 2천500억 달러에 근접했다. 이제 노키아 8개가 모여야 애플을 당할 수 있을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 곡선은 10년 동안 정확하게 엑스(X)자를 그리며 완전히뒤바뀐 운명을 설명하고 있다.
◆구원투수는 MS 출신 SW 전문가
직전 CEO인 올리 페카 칼스부오가 갖지 못한, 스티븐 엘롭의 눈에 띄는 이력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 회사에서 일했다는 사실과 주로 SW 분야에서 일했다는 점이다. 이는 노키아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어느 정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노키아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 마디로 혁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혁신의 키워드로 미국 방식(애플)과 SW를 꼽은 것이다.
노키아를 휴대폰의 대명사로 만들었던 주인공인 요르마 올릴라 이사회 의장은 "이제 회사가 혁신할 때"라며 "이사회는 스티븐 엘롭이 노키아의 잠재력을 현실화시켜낼 수 있는 풍부한 산업 경험을 가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아르야 수미넨 대변인도 "SW 산업에서의 경험, 미국 시장에 대한 이해 등으로 봤을 때 이롭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MS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향후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MS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해 두 회사는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은 바 있다. 노키아 휴대폰에 MS의 오피스 문서를 넣기로 한 것이다. 당시 엘롭은 이 계약을 주도했던 사람이다.
이롭은 또 최근 더 주목을 받고 있는 MS의 스마트폰 운용체계 윈도폰7과도 관계가 깊다. 순전히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노키아 스마트폰 운용체계 심비안의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윈도폰7과 심비안을 엮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트너 분석에 따르면 심비안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4년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점유율이 46.9%였지만, 2014년에는 30.2%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윈도폰7도 올 4.7%에서 내년 5.2%로 약간 상승하겠지만 2014년에는 3.9%로 미미한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이 반면에 안드로이드는 지난해 3.9%에서 2014년 29.6%로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나왔다. 애플 iOS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심비안의 노키아는 지난 3년 동안 애플 아이폰에 당했고 향후 3년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당할 것으로 예상된 것이다. 윈도폰7의 MS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구글과 같은 광명이 보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둘 다 처지가 비슷한 상황이고, 노키아와 MS 사이에는 이롭이 새로운 인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전임 CEO 칼스부오 체제에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눈길도 주지않았지만 엘롭 체제에서 변할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OS 문제와 함께 또 하나의 수술 부위는 앱 스토어다.
주지하듯 애플의 성공은 직감적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한 하드웨어 기능과 함께 풍부한 앱스토어 생태계 때문이다. 현재 애플 앱스토어의 애플리케이션은 25만개에 달한다. 지금까지 다운로드한 건수만 65억 건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아이폰으로 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키아의 ‘오비마켓’은 많은 이에게 이름마저 생소한 형편이다. 노키아가 차기 선장으로 SW 전문가인 스티븐 엘롭을 택한 이유도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4분기, 신병기 N8을 주목하라
노키아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스티븐 엘롭이 다루게 될 첫 신병기는 ‘N8’이다. 10월1일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된다. 이 제품의 성패가 스티븐 엘롭의 새 노키아호의 향후 진로를 가름할 시금석과도 같은 것이다.
N8은 그야말로 노키아의 야심작이다. 운용체계(OS)로 심비안 3를 쓰고 있으며, 720프레임의 HD급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는 칼 자이쯔 렌즈를 탑재한 1200만 화소 카메라를 달았다. 3.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반 정전식 터치스크린도 갖췄다. 16GB 내장메모리에다 영상통화용 카메라도 앞에 달았다.
알루미늄 바디를 써서 분위기도 한결 세련됐다.
특히 새 운용체계인 심비안3는 멀티 터치, 편의성을 높인 개선된 유저 인터페이스(UI) 등의 장점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과거와 달리 N8에 대한 미국 애널리스트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모건스탠리의 패트릭 스탠대어트 애널리스트는 "N8 출발이 괜찮다"며 "사업자들로부터 주문이 강한 상태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스티븐 엘롭은 캐나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MS에 계속 있을 경우 스티브 발머 CEO를 이어갈 차기 후계자로 여겨지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MS대신 침몰 직전의 휴대폰 거함 노키아를 택했다. 그 때문에 SW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이롭이 상처난 휴대폰 명가 노키아의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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