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남기자] 정부가 30일 발표한 '추석 민생안정 대책'은 평년 대책과 대동소이하다.
제수품의 가격안정을 위한 공급확대 계획이나 교통대책, 안전·비상진료대책 등 모두 종전에 구사했던 정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이날 발표된 민생안정 대책은 정부가 고민 없이 기존에 사용했던 방식에 살을 조금 더 얹혔을 뿐, 진정한 민생 안정을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과 임종룡 차관은 오는 9월부터는 물가 인상률이 3%대로 하락하면서 물가 안정기조로 들어설 것이라고 몇 차례 언급했다.
이 같은 근거로 박 장관과 임 차관은 농수산물 가격 안정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실제 지난 1, 2월 한파와 구제역으로 돼지고기 값과 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2월 물가상승률이 4.5%, 3월 물가 상승률이 4.7%로 공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4, 5월 기온이 올라가면서 구제역이 끝나고 농수산물 출하가 늘면서 물가 상승률도 4.2%, 4.1%로 각각 떨어졌다.
박 장관과 임 차관의 전망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물가는 다시 지난 6월에는 4.4%, 7월에는 4.7%로 다시 상승했다. 이는 긴 장마와 태풍 등 호우로 인해 농수산물의 공급물량 부족에 따른 것으로 정부는 풀이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고유가가 자리하고 있다.
정유사의 유가 100원 할인 종료(7월6일)를 앞두고 6월 기름값이 상승했고, 또 할인이 끝나면서 한달 간 지속적으로 기름값이 올랐다. 이로 인해 7월 소비자 물가는 지난 3월에 이어 올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애써 물가 상승의 원인을 농수산물의 가격 인상에서 찾으려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유류세 인하 요구와 재정건전성이다.
박 장관은 취임 이후 줄곧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장관은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유류세 인하를 일축했다.
최근 유럽 일부국가와 미국의 재정불안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과 지난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점 등을 감안하면 이는 백번 옳은 정책이다.
또 올 상반기 우리나라가 통합 재정수지에서 2조3천억 적자를 기록한 점은 박 장관의 이 같은 의지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하지만 박 장관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가 경상수지에서 작년 3월 이후 17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점과, 외화 보유액이 3천50억달러에 육박하는 등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채무가 작년 말 현재 390조원에 이르고는 있으나,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경험을 살린다면 정부는 '재정 운용의 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산업은 석유 의존도가 80%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기름값(유류세) 인하 없이는 물가를 잡는 일과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일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두바이유(105달러)는 지난 2008년(130달러∼140달러) 보다는 낮다. 반면, 현재 국내 유가는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설연휴(5일) 기간 1천718만대의 차량이 이동한 점을 감안하면 올 추석 연휴 4일 동안에는 최소 1천만대의 차량이 전국 도로를 누빌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주유소협회는 또 최근 유가를 고려할 경우 이들 차량이 길에 뿌리는 돈은 최소 3조3천억원에서 최대 4조5천억원으로 추산했다. 추석 연휴기간 가장 많은 지출이 기름값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대목 장사'라는 게 있다.
추석이나 설 등 명절 즈음에는 상인들이 평상시 보다 비싸게 물건을 팔고, 실제 소비자들도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진심으로 추석 민생안정을 바랬다면 당연히 이번 대책에 유가 인하책을 포함했어야 옳다.
정수남기자 perec@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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