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특허 침해 혐의로 삼성 등에 대해 소송을 건 목적은 금전적 손해배상보다 경쟁사에 '따라쟁이(copycat)'라는 '주홍글씨'를 찍자는 의도가 크다. 경쟁 제품은 애플보다 한 수 아래라는 법적 근거를 남기려는 전략이다.
애플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이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제품 외관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또렷이 인식된다. 제품 내부에 들어가는 기술 특허의 경우 디자인에 비해 더 원천적이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인식도는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 특허를 침해할 때 '따라쟁이 낙인 효과'가 훨씬 큰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1차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24일 서울중앙지법원은 삼성전자의 애플 디자인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터치스크린을 채용한 단말기는 디자인을 변형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특허를 갖고 있지 않은 업체가 디자인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제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 애플 디자인 특허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디자인 특허가 유효하려면 새롭거나(신규성), 아무도 발명할 수 없는 것(진보성)이어야 하는 데 애플 제품의 경우 그 정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LG전자 프라다폰 등 비슷한 디자인의 선행 제품이 있다고 보았다.
애플 디자인 또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안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소비자들도 그런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자. 이 싸움을 시작한 건 애플이다. 피해를 봤다고 먼저 주장한 곳이 애플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소비자는 피해자일 수도 있는 애플에 우호적인 것 같지 않다. 소송 와중에 가해자일 수도 있는 삼성을 세계 1위로 만들어줬다. 분기마다 5천만 명이 삼성 제품을 산다. 과연 그 많은 숫자가 '짝퉁'을 살 만큼 눈이 먼 것일까. 그 정도 숫자면 삼성 제품에도 사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옳지 않나.
시장은 한국 법원보다 먼저 이런 판결을 내린 셈이다.
애플 마니아들도 애플의 소송 전략에 식상해 하는 듯하다.
애플은 누구나 인정하듯 세계 최고 혁신 기업이었다. 애플 전에 휴대폰은 그저 휴대폰이었다. 애플이 만들고 나서 휴대폰은 전혀 다른 기기가 됐다. 앱 생태계와 연결된 이 스마트한 휴대폰은 못 하는 게 없는 똑똑한 기기로 돌변했다. 세계 소비자는 열광했고 적당히 장사하던 기존 업체들은 추풍낙엽처럼 나뒹굴었다.
애플은 그 덕에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 시가총액 700조원으로 세계 최고 기업이 됐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의 영업이익 중 70%를 독차지한다.
애플은 그러나 마니아들이 보기에도 변했다. 혁신을 지속하기보다는 과거의 혁신을 바탕으로 소송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려는 데 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니아들이 더욱 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소송의 핵심이 애플 혁신의 요체를 보호해달라는 게 아니라 대개는 단순한 디자인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소송이 불리하게 됐지만, 애플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법원에서는 현재 심리를 모두 마치고 배심원들의 평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미국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든 한국 법원의 판단은 꽤 의미 있어 보인다. 시장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섣부른 분석일지도 모르지만, 한국 법원은 애플의 디자인 특허권을 인정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침해했다고 판결함으로써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보다 기업들이 시장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펼쳐 산업을 발전시키고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더 이롭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담당 판사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누가 재판에서 이기고 졌다는 관점을 갖기보다는 양측이 상대방 권리를 적절하게 평가하고 소비자 관점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정도가 어느 한 쪽을 완전히 구제하거나 다른 한 쪽에 치명적으로 타격을 가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이며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시장 경쟁에 다시 나서라는 뜻이겠다.
이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미국 판사도 세 차례나 합의를 종용한 바 있다.
이제 법원이 아니라 시장에서 혁신으로 다시 싸울 때다.
이균성 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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