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상 더 넓혀주겠다" 가닥 잡아가는 금융 빅블러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우버를 비롯해 승차 공유가 각 국가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타다는 규제 리스크를 인지해 여객법을 검토 후 보다 낮은 수준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택시 등 모빌리티 산업의 주체들이 규제 당국과 함께 고민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재판의 출구전략일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이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면서 한 말이다. 타다가 '혁신이냐' 아니면 '불법이냐'를 두고 장기간 공방을 벌여온 끝에, 일단은 법원이 타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박재욱 VCNC 대표가 지난 19일 '타다 논란'과 관련해 무죄 선고를 받은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성우 기자]

택시업계는 "명백한 유사 택시영업에 대해 법원이 면죄부를 줬다"라며 즉각 반발했다. 지난 해 타다금지법 입법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에 나섰을 때처럼 이번에도 택시노조는 운전대를 놓고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타다 갈등'은 기득권이 줄곧 터를 잡아온 곳에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하면서 빚어진 '필연적인' 마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갈등일수록 합의가 참 중요하다.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에 담긴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기득권을 설득하지 못하면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방적으로 도전자를 내친다면 혁신에 뛰어들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한국으로선 혁신이 절실하다. 재판부의 말처럼 양 측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게 출구전략인데, 먹고 사는 문제라 합의가 참 어렵다.

지금 당장은 모빌리티 산업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지만, 모든 업권에서 터질 수 있는 분쟁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선 이미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카드사와 핀테크 업계의 불편한 동거가 딱 그 모양새다.

그간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에 발맞춰 많은 핀테크 업체가 지급결제업에 진출해왔다. 지급결제업은 그간 카드사가 주름을 잡아온 영역이다. 카드사로선 자신들의 독무대에 핀테크라는 새로운 도전자가 나왔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지난해 정부가 가맹점 수수료율을 낮추면서 카드업계는 잔뜩 예민한 상황이다. 굳이 '타다 갈등'으로 비유하자면 카드사가 택시 업계고, 핀테크 업계가 타다인 셈이다.

카드업계의 입장은 이렇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카드업계는 정부로부터 건전성 등 많은 규제를 받고 있는데 반해, 핀테크 업계는 혁신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밀어주고 있다는 불만이다. 일례로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하나 줄이려 해도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데 반해, 핀테크 업체는 사실상 그런 규제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조만간 정부는 간편결제 업체 등에 후불 결제 기능을 부여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카드사와 다를 게 없으니, 규제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동일산업 동일규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게 카드업계의 주장이다.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정부의 금융혁신 추진과정에서 카드사가 간편결제 등 타 결제수단 대비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고 공정한 환경 하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당국과 협의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핀테크 업계는 카드사들의 기득권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치열한 경쟁이 아닌 라이선스를 통해 쥔 기득권인 만큼, 새로운 도전자를 막을 명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되레 후불기능까지 갖추면 지급결제 부문에서 매우 큰 혁신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장의 파이도 커질 테니 서로 좋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아직은 둘 사이의 마찰이 타다처럼 격화되는 양상은 아니다. 다만 이 갈등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핀테크는 빅블러(첨단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로 인해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의 산물이다. 지금은 카드업계지만, 조만간 은행·보험업계와도 틀림없이 비슷한 마찰을 빚게 될 것이다.

결국 중재기구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혁신은 시대의 조류다. 다만 파도에 올라타더라도 기득권의 목소리를 들어 주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다. 은행권이 오픈뱅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간 수수료 압박이 컸던 핀테크 업체들의 부담이 많이 해소됐다고 한다. 기득권의 목소리를 들어주면서 혁신금융을 추진한다면 핀테크 업계의 연착륙은 보다 쉬워질 수 있다. 혁신금융에 보다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방법인 셈이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조그만 책상을 주고 그 안에서 싸우게 하는 게 아니라, 책상을 넓혀서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금융위원회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라며 "카드업계가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 등 새로운 영역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해본다.

서상혁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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