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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성실히 갚을테니 빚 좀 깎아주세요" 채무조정 요구 '정당한 권리' 된다


금융위, 소비자신용법 공개…추심 관행도 고쳐

[사진=뉴시스]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지난 해 치킨집을 개업한 A 씨. 퇴직금을 탈탈 턴 것도 모자라 개인 대출까지 받아 겨우 가게를 열었다. 꼭 성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시작했지만, 올해 코로나19로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대출금도 갚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휴대폰은 빛 독촉 전화로 불이 날 지경. 시간이 갈수록 갚아야할 돈이 많아지고 있어 그야말로 '멘붕'이다.

금융당국이 A 씨 같은 이들을 위해 소비자신용법을 만들었다. 채무자들에게 '빚을 깎아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부여하고, 채권자의 추심 연락도 제한하는 게 큰 줄기다. 채무를 조정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금융당국은 '재기의 기회'를 주는 만큼 오히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9일 금융위원회는 '제9차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T/F 확대회의'를 열고 '소비자신용법안'의 주요 내용을 논의했다.

◆채무조정, 개인의 권리로 '명확화'…금융위 "모럴헤저드 우려 없다"

지난 2009년 정부는 추심자와 채무자간 접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혹한 불법 추심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채권추심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을 펼쳐왔다. 개인 연체채무자 입장에선 여전히 추심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무자가 신용회복위원회 등에 채무조정을 신청하기 전 조기에 채권금융기관과 직접적으로 채무조정을 협의할 기회가 없었으며, 불법 추심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채권추심법도 폭행과 협박 등 특정 추심행위를 금지하는 소극적 규율방식을 따르는 탓에 채무자의 재기 지원과 권익증진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마련된 소비자보호법은 채무자의 방어권을 확대하고 채권자·채무자의 보호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연체가 발생하면 누적되는 연체이자와 추심압박의 부담을 채무자가 고스란히 짊어지는 게 현실이다"라며 "소비자신용법은 채권금융기관과 채무자가 협의를 통해 상생하는 최적의 방안을 찾도록 함으로써 연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소비자신용법의 적용 대상은 개인 채권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 채권은 '채권금융기관이 소비자신용을 원인으로 개인채무자에 대해 보유하는 채권'을 말한다. 소비자신용은 대부계약에 따른 금전대부(카드·할부 포함), 지급보증·보증보험의 대위변제, 채권양수 등의 행위다. 개인채무자는 채무자가 법인이 아닌 개인인 경우를 의미한다. 소비자 신용, 개인채권과 관련해 이 법과 다른 법률이 규정이 다른 경우 소비자신용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채무조정요청권'이다. 채무상환을 연체한 개인채무자는 자력으로 채무의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채권금융기관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채무조정 요청 시 상환이 왜 곤란한지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하며, 받아들여질 경우 채권금융기관은 추심을 중지하고 채무조정 내부기준에 따라 10영업일내 채무조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채무자가 금융기관의 제안을 수락하면 조정의 합의가 성립된다.

내부 기준은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수립한다. 당국은 각 금융사에게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하달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명순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국장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건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자율적인 채무조정 결정을 방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라며 "이는 소비자신용법의 정신을 기본적으로 저해하고 회사별로 채무조정 내용이 획일화 돼 입법 취지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채무자가 채무조정요청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소득과 재산 수준 등 채무 상환이 왜 곤란한지 입증해야 하는 서류를 제출해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선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가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곤 했다.

금융위원회는 오히려 채무조정요청권이 '성실한 상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국장은 "사적 채무조정이 법안 발효를 통해 활성화되면 이분들도 1차적으로는 재기를 모색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며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갚기'라는 것을 조기에 실현하고 정상 궤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채무자의 채무조정을 전문적으로 돕는 업종인 '채무조정교섭업'도 신설된다. 채무조정 요청서의 작성·제출대행, 제출 후 채무조정 조건의 협의대행 등 개인채무자의 부족한 전문성과 협상력을 보완한다,

채무자 피해 방지를 위해 수수료, 업무 행위 등은 엄격히 규율된다. 업자는 개인채무자로부터 교섭수수료, 성과수수료 이외의 대가를 수취하면 안 되며, 총수수료 상한도 100만원 범위 내로 제한된다.

이 국장은 "업자들한테 유인을 주기 위해선 최소한의 수수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다만 과도한 수준이 되지 않도록 회생·파산절차와 관련된 변호사 비용이 평균적으로 150만~2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해 기본적으로 100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연체 기간 중 채무금액이 늘어날 걱정도 없어진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면 원금 전체를 상환토록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원금전체에 약정이자와 연체가산이자가 부과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아직 상환기일이 도래하지 않은 채무원금에 대해선 연체가산이자 부과가 금지된다. 이에 위반되는 약정 체결 시 약정이자 초과부분에 대한 이자계약은 무효화 된다.

 [이미지=금융위원회]
[이미지=금융위원회]

◆추심연락 수시로 못한다…채권금융회사 책임 강화

금융당국은 수시로 채무자에게 추심 연락을 취하는 채권자들의 관행도 손본다. 법안에 따르면 채권추심자가 동일한 채권의 추심을 위해 개인채무자에게 1주일에 7회를 초과해 추심 연락을 취하는 것을 금지한다. 동일한 채권을 추심함에 있어 채권금융기관, 수탁추심업자, 위임직채권추심인의 연락행위를 모두 합산한 수치다.

채권추심자가 추심연락을 통해 상환능력 등을 확인한 경우 확인일로부터 7일간 재연락이 금지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채권추심에서 정당한 사유 없는 반복적 연락을 금지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라며 "추심자의 지나치게 빈번한 연락은 채무자의 정상생활을 방해하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함에 따라 빈도를 제한했다"라고 설명했다.

채무자가 채권추심자에게 특정 시간대 또는 특정한 방법을 통한 추심연락을 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연락제한요청권'도 만들어진다. 추심자는 추심 활동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없다면, 요청에 응해야 한다. 예컨대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에 연락제한을 요청한 경우 추심자가 다른 요일이나 시간대에 연락할 수 있으므로 요청을 수락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채권 금융기관의 책임을 보다 강화했다. 연체채무자도 고객이라는 점을 감안해 제3자를 통해 추심하는 경우에도 채무자 보호책임을 지속적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우선 원채권금융기관은 수탁·매입추심업자가 소비자신용법·채권추심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한다. 만약 이들의 위법행위를 발견한 경우 즉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개인연체채권을 양수한 채권금융기관이 해당 채권을 제3자에게 재차 양도하기 위해선 원채권금융기관의 동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채권금융기관은 채무조정 업무를 수탁추심업자에게 위탁할 수 없다.

특히 채권금융기관은 수탁추심업자, 매입추심업자 선정 시 채무자 처우, 위법·민원이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매입추심업자의 경우 매입 이후 채권자가 되는 만큼, 채무자 보호를 위한 내부기준 전반에 대한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한편, 수탁·매입추심업자가 법을 위반해 손해를 가한 경우 원채권금융기관도 해당 추심업자와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원채권금융기관이 관리책임 이행에 상당한 주의를 한 경우는 제외된다.

또 개인채무자는 소비자신용관련업자와 채권금융기관에 대해 손해배상 대신 300만원 이하 손해액에 대한 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국장은 "소비자신용법안이 금융회사의 입장에선 단순히 버린 채권, 그리고 추심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연체채무자도 여전히 그 금융사의 고객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관계부처, 금융업권 협의를 거쳐 이달 중 소비자신용법안을 입법예고하고 후속 절차를 추진할 방침이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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